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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백제] 11대 비류왕(比流王)

by [悠悠自適] 2024. 1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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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11대 비류왕(比流王)
출생 ? ~ 304년 10월
재위 304년 10월 ~ 344년 10월(40년)
가족 부인 1명, 자녀 2남

생애
'삼국사기'에는 비류왕이 6대 구수왕(214년~234년 재위)의 둘째 아들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이 기록에는 신빙성이 떨어진다. 
구수왕이 사망하던 해에 비류왕이 태어났어도 70년이 지난 304년에 비류왕이 왕이 되어 40년을 재위하고, 110세에 사망한다는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류왕은 구수왕 차남의 후손일 가능성이 높다.

비류왕은 성품이 관대하고 자비로우며, 사람을 사랑하며 활쏘기에 능했다.
이전 왕인 분서왕이 사망하고, 여러 아들들이 있었지만 나이가 어려서 왕위에 오를수가 없어 신하와 백성의 추대로 백제 11대 왕에 올랐다.
308년(재위 9년) 정월, 신하를 보내 백성들의 질병과 어려움을 살펴주었고, 환과고독(鰥寡孤獨-홀아비, 과부, 고아, 자식이 없는 사람)등 생활이 어려운 사람에게 곡식 3석씩을 하사했다.

327년(재위 24년) 9월, 내신좌평 우복이 북한성을 거점으로 반란을 일으켜 비류왕이 병력을 동원해 토벌했다.
331년 봄, 여름에 가뭄이 들고 7월에야 비가 내렸는데 기근으로 백성들의 삶이 피폐했다.
333년 5월, 별이 떨어져 왕궁이 불타고 민가에까지 불이 번졌다.
이렇게 비류왕은 재위시절 주변국과의 큰 전쟁은 없었지만, 정치적 불안과 자연재난이 있었으며 344년 10월에 생을 마감하였다.

삼국사기 비류왕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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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사건
· 내신좌평 우복의 반정
비류왕은 이전 왕인 분서왕이 사망하고 그의 아들들이 어려서 대신 추대를 받아 왕에 올랐다지만, 찬탈을 했을 가능성이 있고, 그로 인해 불안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327년 9월, 내신좌평 우복이 북한성을 거점으로 반란을 일으킨 사건이다.
우복은 비류왕의 이복 동생으로 6년전인 321년 내신좌평에 임명된 사람이다.
내신좌평은 왕의 출납기관으로 오늘날의 비서실장격이고 중요 요직이다.

이런 우복이 반란을 일으켰다는것은 비류왕도 명분없이 왕이 되었다는 것을 나타낸것이고, 왕이 있는 궁성이 아닌 북한성을 중심으로 한것은 치밀하게 계획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우복의 난은 비류왕이 진압군에 의해 성공하지 못했다.
비류왕 사망후에도 다음 왕을 비류왕의 아들인 근초고왕이 바로 왕이 되지 못하고 고이왕계인 계왕이 되었고, 계왕마저도 재위 2년이 못되어서 사망했다.
그리고 근초고왕이 이어 받은것을 보면 고이왕계통과 초고왕계통의 왕위 다툼으로 갈등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가족관계(비류왕 가계도)

· 왕후
왕후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 장남
비류왕의 장남. 기록은 남아있지 않지만 아마도 비류왕 사망이후 왕권다툼에서 계왕측에 의해 사망했을것으로 추측된다.

· 근초고왕
비류왕의 차남. 13대 근초고왕 참고.

비류왕 재위당시 삼국시대 연표

비류왕은 반란과 재난, 인재속에서 왕권을 지키며 40년을 재위하였다.
동시대에 신라는 기림왕, 흘해왕이 재위하였고, 고구려는 미천왕, 고국원왕이 재위하였다.

백제 왕 계보
온조왕-다루왕-기루왕-개루왕-초고왕-구수왕-사반왕-고이왕-책계왕-분서왕-비류왕-계왕-근초고왕-근구수왕-침류왕-진사왕-아신왕-전지왕-구이신왕-비유왕-개로왕-문주왕-삼근왕-동성왕-무령왕-성왕-위덕왕-혜왕-법왕-무왕-의자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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