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10대 산상왕(山上王)
출생 ? ~ 227년 5월
재위 197년 5월 ~ 227년 5월(30년)
가족 부인 2명, 자녀 1남
생애
신대왕의 아들이자, 고국천왕의 동생이며 이름은 연우.
고국천왕이 죽자 우씨왕후는 시동생인 발기를 찾아가 그의 의중을 떠보았지만, 여의치 않자 또다른 시동생인 연우(산상왕)을 찾아가 왕권과 취수혼을 제안한다.
연우(산상왕)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 산상왕으로 등극하였으나 발기가 난을 일으켰다.
이에 산상왕이 동생 계수를 시켜 난을 진압하고, 형수이자 우씨왕후를 왕비로 맞아들였다.
그러나 우씨왕후에 의해 왕이 된 산상왕은 입지가 좁았고, 그나마 버팀목이었던 국상 을파소마저 사망하자 왕권강화를 위해 천도를 계획한다.
후계자가 없던 산상왕은 209년 소후 후녀에게 아들 교체(동천왕)를 얻게되고, 같은해 환도성으로 천도한다.
이로써, 200년동안 계속되었던 위나암성 시대를 종결하고, 환도성 시대를 열게되었다.
천도이후 산상왕은 왕권을 회복하고, 213년 우씨왕후와 신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왕자 교체를 태자에 책봉한다.
산상왕은 영토확장정책을 자제하고, 안정을 꾀하는데 주력하였다.
이후 227년 5월, 생을 마감한 산상왕은 산상이라는 지역에 묻히고, 묘호는 산상왕(山上王)이라고 하였다.
삼국사기 산상왕 기록
주요사건
· 발기의 난
고국천왕이 사망하자 우씨왕후의 계략으로 왕권에서 멀어진 고국천왕의 동생 발기가 일으킨 난이다.
그러나 난이 여의치 않자, 요동태수에게 투항하고 군사를 빌려 다시 성을 공격하자, 산상왕이 동생 계수를 시켜 진압하도록 한다.
이에 왕자 계수가 난을 진압하고, 발기는 자결한다.
· 환도성 천도
209년 위나암성에서 환도성으로 천도.
위나암성에서 발기의 난과 우씨왕후의 취수혼으로 백성들의 민심이반과 외척세력의 득세로 수도를 이전하였다.
198년부터 환도성 축성공사를 시작하였고, 국상 을파소가 주도하였다.
하지만 민심이 안정되지 않았고, 외척들의 반발도 거세 쉽사리 천도하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203년 국상 을파소마저 사망하자 더욱 어려워졌다.
그러나 11년동안 입지를 다지며, 민심을 얻고 아들까지 얻은 산상왕은 마침내 환도성으로 천도한다.
가족관계(산상왕 가계도)
· 왕후 우씨
연나부 출신으로 우소의 딸.
180년 2월에 왕후로 책봉되었고, 후사는 없으며 촤가려의 난 이후 정치적 세력이 약해졌다.
197년 5월 고국천왕이 죽자, 이를 숨기고 동생 발기와 연우(산상왕)를 찾아가 취수혼으로 다시 왕후에 오른다.
이후 자세한 내용은 산상왕 참고.
· 소후 후녀
관나부 주통촌 출신.
아들이 없던 산상왕은 후궁을 들이려 했으나 우씨왕후와 외척의 반대로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208년 나라 제사에 쓸 돼지가 도망치는 일이 일어나자 돼지가 달아난 곳이 관나부 주통촌이었다.
돼지를 잡은 사람은 처녀였으며, 이 소식을 들은 산상왕이 직접 만나게 되었다.
이후 이 여인은 아이를 갖게 되었고, 우씨왕후는 이 여인을 죽이라고 명령했지만 실패하였다.
이에 산상왕이 여인을 보호하고 소후로 받아들이고, 아들 교체(동천왕)을 낳았다.
· 교체
고구려 11대 동천왕이자, 산상왕의 유일한 아들.
동천왕편 참고.
산상왕 재위당시 삼국시대 연표
산상왕은 발기의 난을 진압하고 환도성으로 천도했다.
같은 시기에 백제는 초고왕과 구수왕이 재위하였고, 신라는 내해왕이 재위하였다.
고구려 왕 계보
동명성왕-유리명왕-대무신왕-민중왕-모본왕-태조왕-차대왕-신대왕-고국천왕-산상왕-동천왕-중천왕-서천왕-봉상왕-미천왕-고국원왕-소수림왕-고국양왕-광개토대왕-장수왕-문자명왕-안장왕-안원왕-양원왕-평원왕-영양왕-영류왕-보장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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