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21대 소지 마립간(炤知 麻立干)
출생 ? ~ 500년 11월
재위 479년 2월 ~ 500년 11월(21년 9개월)
가족 부인 2명, 자녀 1남1녀
생애
소지 마립간은 자비왕의 장남이고, 모친은 서불한 미사흔의 딸이다.
소지는 어려서 효행이 뛰어났고, 남을 높이고 스스로를 낮추었으며 스스로를 지켰으니, 사람들이 모두 그를 따랐다.
479년 2월, 자비왕이 사망하자 신라 21대 왕에 올랐다.
479년(재위 원년), 대사면령을 내리고 백관들의 작위를 한 자급을 하사했다.
480년 2월, 시조 사당에 제사를 지내고, 5월에는 도읍에 가뭄이 들었다.
10월에는 백성들이 기근에 시달려 창고를 열어 곡식을 나누며 진휼했고, 11월에는 말갈이 북쪽 변경을 침공했다.
481년(재위 3년) 2월, 비열성에 행차해 군사들을 위무하고 전투복을 하사했다.
3월, 고구려와 말갈이 함께 북쪽 변경에 침입해 호명등 7곳의 성을 취했고, 미질부(포항부근)까지 진군했다.
신라군은 백제와 가야의 구원병과 함께 길을 나누어 그들을 방어하여 적이 패하여 퇴각하였다.
그들을 추격하여 니하의 서쪽에서 격파하고 수급 1천여를 베었다.
482년(재위 4년) 2월, 태풍이 불어 나무가 뽑혔고, 금성 남문에 불이 났다.
4월, 오랜 비로 왕이 도읍과 지방의 해당 부서에 명해 죄수들을 헤아리게 했고, 5월에는 왜놈들이 변경을 침략했다.
483년 4월과 7월에는 홍수가 났고, 10월에는 일선(구미지역)경계에 행차하여 재해를 당한 백성들을 찾아 형편을 살피고 차등을 두어 곡식을 하사했다.
11월에는 천둥이 치고 도읍에 전염병이 크게 돌았다.
484년(재위 6년) 정월, 오함을 이벌찬으로 삼았고, 3월에는 토성이 달을 범했고, 우박이 떨어졌다.
7월, 고구려가 북쪽 변경을 침공해 모산성 아래에서 우리 군사와 백제가 함께 공격하여 그들을 크게 격파했다.
485년 2월, 구벌성을 축조했고, 4월에는 시조 사당에 제사를 지내고 수묘 20가호를 추가로 두었다.
5월에는 백제가 내방해 왔다.
486년(재위 8년) 정월, 이찬 실죽을 장군으로 제수하고 일선의 경계 장정 3천을 징발해 삼년과 굴산, 두곳의 성을 개축했다.
2월, 내숙을 이벌찬으로 삼고 국정에 참여케 했고, 4월에는 왜놈들이 변경을 침범했다.
8월, 낭산 남쪽에서 군대를 대규모로 사열했다.
487년(재위 9년) 2월, 내을에 신궁을 설치했는데, 내을은 시조가 오래전 출생한 곳이다.
3월, 사방에 우역을 설치하고 해당부서에 명하여 관용 도로를 수리했고, 9월에는 월성을 중수했다.
488년 정월, 왕이 월성으로 거소를 옮겼고, 2월에는 일선군에 행차해 홀아비, 과부, 고아, 홀로사는 백성들을 살피고 차등을 두고 곡식을 하사했다.
3월에는 일선에서 돌아오는 길에 거치는 주군에 죄수들을 헤아려 두가지 사형죄를 제외하고 모두 방면하였다.
6월, 동양에서 눈이 6개 달린 거북이를 바쳤고, 배 아래 문자가 있었다.
7월, 도나성을 축조했다.
489년(재위 11년) 정월, 놀고먹는 백성들에게 농사짓게 했다.
9월에는 고구려가 북쪽 변경을 습격해 과현에 이르렀고, 10월에는 호산성이 함락되었다.
490년 2월, 비라성을 중수했고, 3월에는 추라정에서 용이 나타났다.
또, 처음으로 도읍에 시장을 열어 사방의 물자를 유통했다.
492년(재위 14년) 봄, 여름에 가물어 왕이 스스로 꾸짖는 마음으로 평소보다 반찬을 줄였다.
493년 3월, 백제왕 모대(24대 동성왕)가 사신을 파견하여 혼인을 청하자 왕이 이벌찬 비지의 딸을 백제에 보냈다.
7월, 임해와 장령에 두 진을 설치하여 왜적의 침략에 방비했다.
494년(재위 16년) 4월, 홍수가 났고, 7월에는 장군 실죽등이 고구려와 살수의 벌판에서 전투를 벌였으나 승리하지 못하고 퇴각하여 견아성을 지켰다.
고구려 군대가 견아성을 포위하자 백제 동성왕이 병사 3천을 보내 구원하여 포위를 풀었다.
495년 정월, 왕이 친히 신궁에서 제사를 지냈다.
8월, 고구려가 백제 치양성을 포위하니 백제가 구원을 청했다.
왕이 장군 덕지에게 군대를 거느리고 백제를 구원하게 했고, 고구려 무리를 궤멸시키니, 백제왕이 사신을 파견해 사례했다.
496년(재위 18년) 2월, 가야국에서 흰 꿩을 보내왔는데, 꼬리 길이가 5척이었다.
3월, 궁궐을 중수했고, 5월에는 큰 비로 알천의 물이 넘쳐 2백여 호가 떠내려가고 잠겼다.
7월에는 고구려가 쳐들어와 우산성을 공격하여 장군 실죽이 출전해 니하 강가에서 그들을 격파했다.
8월에는 남쪽 교외로 행차하여 농작물을 살폈다.
497년(재위 19년) 4월, 왜놈들이 변경을 침범했고, 7월에는 가뭄에 황충이 일었다.
왕이 신하들에게 백성을 잘 다스릴만한 재주가 있는 사람을 각각 1명을 천거하게 했다.
8월, 고구려가 우산성을 공격해 함락시켰다.
500년(재위 22년) 3월, 왜놈들이 장봉진을 공격해 함락시켰다.
4월, 폭풍으로 나무가 뽑혔고, 금성의 우물에서 용이 나타났으며, 도읍에 누런 안개가 사방에 가득했다.
9월, 왕이 날이군(경북 영주)에 행차했는데, 날이군에 파로라는 사람에게 딸이 있었는데, 이름은 벽화로 나이는 16세이며, 진정으로 나라에서 미색이 가장 뛰어났다.
그 아비가 수놓은 비단옷을 입히고 빛깔나는 명주를 덮은 가마에 태워 왕에게 바쳤다.
왕은 먹을것을 보낸것으로 알고 열어보니, 어린 소녀가 있어서 괴상하여 받지 않았다.
왕이 궁으로 돌아왔는데 생각이 그치지 않자, 두세번 미복 차림으로 잠행을 나가 그녀의 집으로 가서 잠자리를 같이했다.
그리고 고타군을 지나가는 길에 노파의 집에서 숙박하게 되어 왕이 물어보길,
"지금 백성들이 국왕을 어떤 왕으로 여깁니까?"하고 물어 노파가 답하길,
"많은 백성들이 성인으로 보고 있지만, 오로지 저만 의심스럽습니다. 어느 사람이 말하길 왕이 날이군의 여자와 동침하기 위해 수차례 미복 차림으로 왔다고 합니다.
용에게 물고기 옷을 입히면 어부에게 제어당하는데, 지금 왕께서는 최고의 자리에 있으면서 스스로 신중하지 아니하니 이를두고 성인이라고 하면, 그 누가 성인이 아닌 사람이 있겠습니까?"
왕이 이를 듣고는 매우 부끄러워 했고, 즉시 그녀를 별실에 두었고, 아들 한명을 출생했다.
11월, 소지 마립간이 생을 마감했다.
가족관계(소지 마립간 가계도)
· 왕비
선혜부인으로 이벌찬 내숙의 딸.
· 보도부인
신라 23대 법흥왕의 왕비.
· 벽화부인
날이군 지역 출생으로 미모가 뛰어나 소지왕의 후비가 되었다.
· 왕자
태어나기 전에 아버지인 소지왕이 사망하여, 별다른 기록은 없다.
주요사건
· 백제와의 결혼 동맹
소지 마립간이 재위하고 나서 신라는 고구려의 침략이 끊이지 않았고, 백제또한 마찬가지였다.
당시 고구려 장수왕의 남하정책으로 인해 신라와 백제는 전쟁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래서 신라와 백제는 서로 도와주면서 고구려를 막았다.
백제와 신라는 이 군사동맹을 더욱 공고히 하고자 왕실 가문 사이의 결혼동맹을 맺었다.
493년 3월, 신라 이찬 비지의 딸을 백제 동성왕이 후비로 맞이하면서 백제와 신라의 결혼 동맹이 성사되었다.
소지 마립간 재위당시 삼국시대 연표
소지 마립간은 재위기간동안 북쪽의 고구려, 남쪽의 왜나라의 침략에 시달렸고, 많은 자연재해까지 일어났다.
동시대에 고구려는 장수왕, 문자명왕이 재위하였고, 백제는 삼근왕, 개로왕이 재위하였다.
신라 왕 계보
혁거세 거서간-남해 차차웅-유리 이사금-탈해 이사금-파사 이사금-지마 이사금-일성 이사금-아달라 이사금-벌휴 이사금-내해 이사금-조분 이사금-첨해 이사금-미추 이사금-유례 이사금-기림 이사금-흘해 이사금-내물 이사금-실성 이사금-눌지 마립간-자비 마립간-소지 마립간-지증 마립간-법흥왕-진흥왕-진지왕-진평왕-선덕여왕-진덕여왕-태종 무열왕-문무왕-신문왕-효소왕-성덕왕-효성왕-경덕왕-혜공왕-선덕왕-원성왕-소성왕-애장왕-헌덕왕-흥덕왕-희강왕-민애왕-신무왕-문성왕-헌안왕-경문왕-헌강왕-정강왕-진성여왕-효공왕-신덕왕-경명왕-경애왕-경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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