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

[신라] 23대 법흥왕(法興王)

by [悠悠自適] 2025. 3. 19.
반응형

 

신라 23대 법흥왕(法興王)
출생 ? ~540년 7월
재위 514년 7월 ~ 540년 7월(26년)
가족 부인 1명, 자녀 1녀

생애
법흥왕은 이름은 원종이고, 지증 마립간의 장남이며, 모친은 연제부인이다.
신장은 7척으로 관대하고 후하며, 백성들을 사랑했다.
514년 7월, 지증 마립간이 사망하자 신라 23대 왕에 올랐다.
삼국사기에는 법흥왕부터 왕의 호칭을 사용했다.(거서간 1명, 차차웅 1명, 이사금 16명, 마립간 4명)

516년(재위 3년) 정월, 신궁에서 제사를 지냈고, 양산 우물에서 용이 나타났다.
517년 4월, 처음으로 병부를 설치했다.
518년 2월, 주산성을 축조했다.

520년(재위 7년) 정월, 율령을 반포하고, 처음으로 백관들의 공복을 제정해 관직에 따라 붉은색과 자주색으로 나누었다.
521년, 양나라에 사신을 파견해 조공했다.
522년 3월, 가야 국왕이 사신을 보내와서 혼인을 청해 왕은 이찬 비조부의 누이를 그들에게 보냈다.
524년 9월, 왕이 남쪽 변경 개척지로 순행을 나갔는데, 가야 국왕이 와서 만났다.
525년 2월, 대아찬 이등을 사벌주(상주) 군주로 삼았다.

528년(재위 15년), 불법(佛法, 불교의 가르침)이 행해졌다.(이차돈의 순교, 아래 주요사건 참고)
529년, 영을 내려 살생을 금했다.
531년 3월, 제방을 수리하고, 4월에는 이찬 철부를 상대등으로 제수하여 국사를 총괄하게 했다.
상대등이라는 관직이 시작되었는데, 지금(고려)의 제상과 같다.

532년(재위 19년), 금관가야 국왕 김구해가 왕비와 세아들인 노종, 무덕, 무력(김유신의 할아버지)과 함께 국고의 보물을 가져와 항복했다.
왕은 그들을 대접하고 상등 벼슬과 본국을 식읍으로 주었다.
그중 무력은 벼슬이 각간(1등급)에 이르렀다.
534년, 상대등 철부가 사망했다.

536년(재위 23년), 연호를 처음으로 칭하고 건원을 원년이라 했다.
538년 정월, 교서를 내려 지방관이 가족들을 데리고 부임하게 허락했다.
540년 7월, 왕이 생을 마감했다. 시호는 법흥(法興)이며, 애공사 북쪽 봉우리에 장사를 지냈다.

가족관계(법흥왕 가계도)

· 왕비
보도부인 박씨.

· 지소태후
신라 24대 진흥왕의 어머니

· <화랑세기>에는 법흥왕의 후비인 옥진궁주, 벽화부인, 보과부인과 비대, 삼엽, 모량, 남모등의 자녀등이 기록되어 있으나, 삼국사기에는 기록이 없어 여기서는 생략하였다.

주요사건
· 이차돈의 순교(殉敎)
528년(재위 15년), 불법(佛法, 불교의 가르침)이 행해졌다.
예전 눌지왕(19대왕)때 승려 묵호자가 고구려에서 일선군(경북 구미)에 이르러 군의 백성 모례가 집에 굴방을 만들어 편안하게 지내게 모셨다.
당시 양나라에서 사신을 파견해 의복과 향을 보내주었다.
군신들이 그 향의 이름과 사용법을 몰라 사람들을 보내 향을 가져가서 물었다.

묵호자가 향을 보고 이름을 칭하며 말하길,
"이것을 태우면 곧 향기가 짙게 나는데, 신성한 곳에 정성이 도달하는 것입니다.
소위 신성은 삼보를 넘어서는 것은 없습니다.
첫째는 불타(부처), 둘째는 달마(불경), 셋째는 승가(승려)입니다.
만약 이것을 태우며 소원을 빌며 반드시 영묘한 감응이 있을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이때 왕의 딸이 병세가 위독하여 왕이 묵호자로 하여금 향을 태우고 서원을 나타나게 하였더니 공주의 병이 얼마되지 않아 나았다.
왕이 매우 기뻐하며 음식과 선물을 묵호자에게 후하게 내려주었다.
묵호자가 궁에서 나와 모례를 만나 받았던 물건을 그에게 주고 말하길, "저는 지금 돌아갈 곳이 있어 인사를 합니다."
그 뒤로 그가 간 곳을 알지 못했다.

소지왕 시대에 이르러 아도화상이 그를 모시는 3명과 모례의 집에 왔다.
차림새가 묵호자와 닮았는데 수 년을 병없이 살다가 죽었다.
그를 모시던 3명은 경률론을 강독했는데, 믿고 받드는 자들이 있었다.

이때에 이르러 왕 또한 불교를 흥하게 하고자 했으나, 군신들이 이를 믿지 않고 거침없이 비방하는 말을 입에 올리자 왕이 곤란해했다.
측근인 이차돈이 아뢰길 "청하옵건대 소신을 베어 대세인 의견을 바로잡으십시오."
왕이 "불도를 일으키고자 하는 것인데 죄가 없는 사람을 죽이는 것은 옳지 않다."
이차돈이 대답하길 "만약 불도가 행해진다면, 소신이 비록 죽어도 여한이 없을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군신들을 불러 묻자 모두가 말하길, 
"지금 승려 무리를 보면, 머리를 깎고 이상한 옷을 입고 있으며, 말을 주고받는 것도 기궤하여 정상이 아닙니다.
지금 그들을 내버려 둔다면 후회가 있을까 두렵습니다.
신들은 비록 중죄를 받더라도 왕명을 받들지는 못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이차돈이 "지금 군신들의 말은 옳지 않습니다.
무릇 비상한 사람이 있고, 그러한 연후에 비상한 일이 있습니다.
지금 불교의 가르침을 들어보니 깊이가 심오하여 믿지 않는것이 두렵습니다."라고 하니 왕이 말하길,
"많은 신하들의 말이 굳세어 깨뜨릴 수가 없고, 그대만이 홀로 다른말을 하니 양쪽 다 따를수는 없다."고 하였다.

마침내 담당 관리에게 명하여 이차돈의 목을 베려고 하자, 이차돈이 말하길,
"내가 불법을 위해 형벌을 받으니, 부처께서 신령스럽다면 내가 죽고 반드시 기이한 일이 있을것입니다."
이차돈의 목을 베자 피가 솟아 나왔으며, 색이 우윳빛같이 흰색이었다.
신하들이 이것을 두고 괴이하게 생각해 다시는 불교의 일을 헐뜯지 않았다.

법흥왕 재위당시 삼국시대 연표

법흥왕은 아버지인 지증왕에 이어 많은 업적을 남겼다.
병부 설치, 율령 반포, 공복 제정, 불교 수용, 살생 금지, 상대등 설치, 금관가야 복속, 건원이라는 연호 사용등 많은 업적이 있다.

동시대에 고구려는 문자명왕, 안장왕, 안원왕이 재위하였고, 백제는 무령왕, 성왕이 재위하였다.


신라 왕 계보
혁거세 거서간-남해 차차웅-유리 이사금-탈해 이사금-파사 이사금-지마 이사금-일성 이사금-아달라 이사금-벌휴 이사금-내해 이사금-조분 이사금-첨해 이사금-미추 이사금-유례 이사금-기림 이사금-흘해 이사금-내물 이사금-실성 이사금-눌지 마립간-자비 마립간-소지 마립간-지증 마립간-법흥왕-진흥왕-진지왕-진평왕-선덕여왕-진덕여왕-태종 무열왕-문무왕-신문왕-효소왕-성덕왕-효성왕-경덕왕-혜공왕-선덕왕-원성왕-소성왕-애장왕-헌덕왕-흥덕왕-희강왕-민애왕-신무왕-문성왕-헌안왕-경문왕-헌강왕-정강왕-진성여왕-효공왕-신덕왕-경명왕-경애왕-경순왕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