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26대 진평왕(眞平王)
출생 567 ~632년 1월
재위 579년 7월 ~ 632년 1월(52년 6개월)
가족 부인 1명, 자녀 2녀
생애
진평왕은 진흥왕의 장남인 태자 동륜의 아들로 모친은 만호부인 김씨로 입종 갈문왕의 딸이다.
이름은 백정(白淨)이며, 579년 7월 진지왕이 사망하자 신라 26대 왕에 올랐다.
진평왕은 태어날때 기이한 외모에 신체는 장대했다.
뜻과 지식이 깊고 굳세었으며, 지혜롭고 사리에 밝았다.
579년(재위 원년) 8월, 이찬 노리부를 상대등으로 삼고, 친동생 백반을 진정 갈문왕으로, 국반을 진안 갈문왕으로 봉했다.
580년 2월, 신궁에 제사를 지냈고, 이찬 후직을 병부령으로 삼았다.
581년 정월, 위화부(조선시대 이조)를 설치했다.
583년 정월, 선부서(조선시대 공조)를 설치하고, 대감, 제감 각 1명씩 배치했다.
584년(재위 6년) 2월, 연호를 건복으로 고쳤다.
3월, 조부령 1명을 배치해 세금에 관한 일을 관장하게 했고, 승부령 1명을 배치해 수레와 타는것에 관한 일을 관장하게 했다.
585년 3월, 가뭄이 들어 왕이 정전에 머무는 것을 피하고, 평소보다 반찬의 수를 줄였으며 남당에 거동하여 죄인들을 헤아려 조사했다.
7월, 고승 지명이 불법을 구하러 진나라에 유학갔다.
586년(재위 8년) 정월, 예부령 2명을 배치하고, 5월에는 천둥과 벼락이 치고 별이 비처럼 떨어졌다.
587년 7월, 대세와 구칠, 두사람이 바다로 떠나갔다.
588년 12월, 상대등 노리부가 죽어 이찬 수을부를 상대등으로 삼았다.
589년(재위 9년) 3월, 원광법사 불법을 구하러 진나라에 유학갔다.
7월, 나라 서쪽에 홍수로 민가 3만 360호가 떠내려가고 침수되어, 죽은자가 2백여명이고, 왕은 사신을 보내 그들을 진휼했다.
591년 2월, 영객부령(조선시대 예조) 2명을 배치했고, 7월에는 둘레가 2,854보인 남산성을 축조하였다.
593년(재위 15년) 7월, 둘레가 3천보인 명활성을 개축하였고, 둘레가 2천보인 서형산성을 개축하였다.
594년, 수나라 황제가 조서를 내려 상개부 낙랑군공 신라왕으로 제수했다.
596년 3월, 고승 승려 담육이 불법을 구하러 수나라에 유학을 갔다.
10월, 영흥사에 화재가 나서 불길이 옮겨붙어 민가 350채를 불에 탔으며, 왕이 친히 그들을 구휼했다.
597년, 삼랑사가 완공되었다.
600년(재위 22년), 고승 원광이 수나라 조빙사로 갔던 내마 제문과 대사 횡천과 함께 돌아왔다.
602년, 대내마 상군이 수나라에 조공을 갔고, 8월에는 백제가 아막성을 침공했다.
왕이 군대를 보내 싸우게 했고, 그들을 물리쳤으나, 귀산과 추항이 그곳에서 전사했다.
9월, 고승 지명이 수나라에 입조하러 갔던 사신 상군과 돌아왔고, 왕은 지명의 계행을 존경해 대덕으로 삼았다.
603년(재위 25년) 8월, 고구려가 북한산성을 침공해 왕이 친히 1만의 병사로 그들을 막았다.
604년 7월, 대내마 만세와 혜문이 수나라에 조공을 했고, 남천주를 폐하고 북한산주를 다시 설치했다.
605년 3월, 고승 담육이 수나라에 입조하러 갔던 사신 혜문과 함께 돌아왔다.
8월, 병사를 징벌해 백제를 침공했다.
608년(재위 30년), 왕이 고구려가 여러차례 봉역을 침범해 근심거리였기에 수나라에 군사를 청해 고구려를 정벌하고자 했다.
그래서 원광에게 명하여 걸사표(파병 요청서)를 짓게 했다.
원광이 말하길 "자신의 생존을 위해 타인을 멸하는 것을 청함은 올바른 승려의 행위가 아닙니다.
빈도가 대왕의 토지에 있으면서 대왕의 물과 풀을 먹으니 어찌 감히 명을 따르지 않겠습니까?"하며, 곧장 걸사표를 지어 올렸다.
2월에는 고구려가 북쪽 변경을 침공해 8천명을 사로잡아갔고, 4월에는 고구려가 우명산성을 빼앗았다.
609년(재위 31년) 정월, 모지악지역 아래 땅에서 불이났는데, 넓이가 4보, 길이가 8보, 깊이가 5척이었으며, 10월 15일에 이르러 꺼졌다.
611년, 왕이 수나라에 사신을 파견해 표문을 올려 군사를 청했고, 수양제가 이를 허락했다.
군사를 움직인 일은 고구려 기록에 있다.
10월, 백제 군대가 쳐들어와서 가잠성을 100일간 포위했고, 현령 찬덕이 힘을 다해 굳게 사수했으나 전사했으며, 성은 함락되었다.
613년(재위 36년), 봄에 가뭄, 4월에 서리가 내렸다.
7월에는 수나라 사신 왕세의가 황룡사에 이르자 백고좌(국가적 불교행사)를 베풀고 원광등 법사를 불러 불교 경전을 강설했다.
614년 2월, 사벌주를 폐하고 일선군을 설치해 일길찬 일부를 군주로 삼았다.
영흥사의 소조불이 스스로 무너졌고, 오래지않아 비구니가 된 진흥왕비께서 돌아가셨다.
615년(재위 37년) 2월, 큰 연회를 3일간 베풀었고, 10월에는 지진이 일어났다.
616년 10월, 백제가 쳐들어와서 모산성을 공격했다.
618년 북한산주 군주 변품이 가잠성을 수복을 꾀하며 병력을 징발해 백제와 전투를 벌였다.
그리고 전장에 나온 찬덕의 아들 해론이 전장으로 나아가 전력을 다해 대적하다 전사했다.
621년(재위 43년) 7월, 당나라에 조공을 했는데, 당고조가 친히 맞이하여 노고를 치하하며 통직산기상시 유문소를 파견해 예물을 보내었는데, 새서(옥새가 찍혀 있는 문서)와 함께 그림이 그려진 병풍, 비단 300단을 하사했다.
622년 정월, 왕이 친히 황룡사에 행차했다.
2월, 이찬 용수를 내성사신으로 삼았다.
예전에는 재위 7년 대궁, 양궁, 사량궁의 세곳에서 각기 사신을 두었다가 이때에 이르러 내성사신 1명을 배치하고 겸하여 삼궁을 관장하게 했다.
623년 정월, 병부에 대감 2명을 배치했고, 10월에는 백제가 늑노현을 습격했다.
624년(재위 46년) 정월, 시위부에 대감 6명, 상사서에 대정 1명, 대도서에 대정 1명을 각각 배치했다.
3월, 당고조가 사신을 보내 왕을 주국 낙랑군공 신라왕으로 책봉했다.
10월, 백제가 쳐들어와서 속함, 앵잠, 기잠, 봉잠, 기현, 혈책등 6곳의 성을 포위했고, 이때 3곳의 성은 함락되거나 항복했다.
급찬 눌최가 봉잠, 앵잠, 기현 3성의 병사들을 모아 굳게 지켰으나 이기지 못하고 그곳에서 전사했다.
625년(재위 47년) 11월, 당나라에 조공하면서 고구려가 길을 막아서 사신을 보내 조공도 못하게 하고 여러차례 침입해 온다고 호소했다.
626년 7월, 당나라에 조공, 당고조가 주자사를 보내 조서를 내려 타이르기를 고구려와 화친하라고 하였다.
8월, 백제가 주재성을 공격하니 성주 동소가 막아 싸웠으나 전사했다.
그리고 고허성을 축조했다.
627년(재위 49년) 3월, 태풍이 불고 흙비가 5일이 넘게 내렸다.
7월, 백제 장군 사걸이 서쪽 변방의 두성을 빼앗아 남녀 3백여명을 사로잡아갔고, 8월에는 서리가 내려 곡식을 죽였다.
628년 2월, 백제가 가잠성을 포위하여 왕이 군대를 출병시켜 그들을 격파했다.
여름에는 큰 가뭄으로 시장을 옮기고 용 그림을 그려 기우제를 지냈고, 가을, 겨울에는 백성들이 굶주리자 자녀를 팔았다.
629년 8월, 왕이 대장군 용춘과 서현, 부장군 유신을 보내 고구려 낭비성을 침공했다.
630년(재위 52년), 대궁 뜰의 땅이 갈라졌다.
631년 2월, 흰 개가 궁궐 담장에 올라갔다.
5월, 이찬 칠숙과 이찬 석품이 모반을 꾀했다.
왕이 그것을 미리알고 칠숙을 잡아 동시에서 참하고 더불어 구족을 멸했다.
석품은 도망쳐 백제 변경에 이르렀으나, 처자식이 보고싶어 낮에는 숨어있다 밤에는 움직이며 돌아오다 총산에 이르렀다.
한 나무꾼이 보고 그와 옷을 바꿔입고, 땔나무를 지고 몰래 집에 이르렀으나 잡혀 처형되었다.
631년(재위 53년) 7월, 당에 미녀 두명을 바쳤다.
위징이 받는것은 마땅한 일이 아니라고 하자 왕이 기뻐하며 말하길,
"저기 임읍(베트남)에서 바친 앵무새조차도 매서운 추위를 말하며, 그 나라로 돌아갈 생각을 하는데, 하물며 두 미녀가 멀리 친족들과 이별했으니 오죽하랴."
그들을 사신을 통해 돌려보냈다. 흰무지개가 궁의 우물을 머금었고, 토성이 달을 범했다.
632년(재위 54년) 정월, 왕이 돌아가시었다.
시호는 진평이고 한지에서 장사를 지냈다.
당태종이 조서를 내려 좌광록대부로 추증하고 부의물로 비단 200단을 내렸다.
가족관계(진평왕 가계도)
· 왕비 마야부인 김씨
갈문왕 복승의 딸.
· 천명공주
진평왕의 맏딸로 진지왕의 장남인 용수와 결혼했다.
용수가 일찍 사망하자 용수의 유언으로 동생인 용춘과 재혼하였다.
그리고 춘추(신라 29대 태종무열왕)를 낳았는데, 누구의 아들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아들이 없는 진평왕이 사망하자 왕위 계승권자였지만, 동생인 덕만에게 양보하고, 월궁과 산에 궁을 지어놓고 살며 여생을 마쳤다.
· 덕만공주
신라 27대 선덕여왕편 참고.
· <화랑세기>에는 마야부인이 사망하자 왕비에 올랐고, 아들을 얻었으나 일찍 죽었다는 기록이 있다.
주요사건
· 대세와 구칠
587년 7월, 대세와 구칠, 두사람이 바다로 떠나갔다.
대세는 내물왕의 7세손으로 이찬 동대의 아들이고, 자질이 뛰어났다.
대세는 어려서 속세를 떠나려는 뜻이 있어 함께 놀며, 교우하던 승려 담수에게
"여기 신라 산골짜기 사이에 있으면서 일생을 마무리한다면, 연못의 물고기와 새장에 갇힌 새가 큰 바다의 광대함과 산과 숲이 관대한 한가로움을 알지 못하는 것과 어찌 다르겠습니까?
제가 장차 뗏목을 타고 바다를 건너 오나와 월나라에 이르러 스승을 따라 점점 앞으로 나아가 이름난 산에서 도를 찾고자 합니다.
만약 평범한 사람이 신선의 가르침을 받고 바뀌어 공허한 모양에서 바람을 타고 나부끼는 모양일 것이니 이는 천하의 기이한 유람이고 장관일 것입니다.
님께서는 저를 따를 수 있겠습니까?"
담수는 대세의 말에 수긍하지 않았다.
대세는 물러나 벗을 구하다 구칠이라는 사람을 만났다.
그는 바르고 곧았으며, 뛰어난 절개와 지조가 있었다.
마침내 남산의 절에 유람을 가서 갑자기 비바람에 나뭇잎이 떨어져 뜰에 고인 물에 떠 있었다.
대세가 구칠에게 "저는 당신과 함께 서쪽으로 유람을 하려는 뜻이 있습니다.
지금 각자 나뭇잎 하나씩을 가지고 배를 만들어 그 중 어느배가 앞서는지 보시지요?"하니 잠시후 대세의 잎이 앞서 있었다.
대세가 웃으며 말하길 "저는 그곳으로 가려고 합니다." 그러자 구칠이 화를 내며,
"나 또한 사나이인데, 어찌 홀로 가지 못하겠습니까?"
대세가 함께 갈 수 있는 사람임을 알고, 그의 뜻을 면밀하게 말했다.
구칠이 말하길 "이것이 제가 바라던 바입니다."
마침내 서로 벗이 되어 함께 남해에서 배를 타고 떠났으며, 그 후에는 그들이 간 곳을 알지 못했다.
· 김유신의 활약
629년(재위 51년) 8월, 왕이 대장군 용춘과 서현, 부장군 유신을 보내 고구려 낭비성을 침공했다.
고구려 방사들이 성에서 나와 진을 쳤는데, 군세가 매우 성대했다.
우리 군사들이 그들을 바라보고는 두려워서 달리 싸우려는 마음이 없었다.
유신이 말하길 "제가 듣기로 옷을 흔들어 움직이면 갖옷이 바르게 되고 그물을 끌면 그물이 펴진다고 했으니, 제가 그물과 옷이 되겠습니다."하고,
곧장 말을 타고 칼을 뽑아들고 적의 진영을 향하여 나아갔다.
유신이 세번을 들어갔다 나오면서 장수들을 베거나 수기를 뽑아왔다.
여러 군사들이 승세를 타서 북을 치고 함성을 지르며 진격하여 5천여 수급을 베어죽이니 그 성이 항복했다.
진평왕 재위당시 삼국시대 연표
진평왕은 신라 성골출신 마지막 남자왕이고, 많은 업적을 남겼다.
하지만, 고구려와 백제와의 전쟁과 자연재해로 재위기간내내 평안하지 못했다.
동시대에 고구려는 평원왕, 영양왕, 영류왕이 재위하였고, 백제는 위덕왕, 혜왕, 법왕, 무왕이 재위하였다.
신라 왕 계보
혁거세 거서간-남해 차차웅-유리 이사금-탈해 이사금-파사 이사금-지마 이사금-일성 이사금-아달라 이사금-벌휴 이사금-내해 이사금-조분 이사금-첨해 이사금-미추 이사금-유례 이사금-기림 이사금-흘해 이사금-내물 이사금-실성 이사금-눌지 마립간-자비 마립간-소지 마립간-지증 마립간-법흥왕-진흥왕-진지왕-진평왕-선덕여왕-진덕여왕-태종 무열왕-문무왕-신문왕-효소왕-성덕왕-효성왕-경덕왕-혜공왕-선덕왕-원성왕-소성왕-애장왕-헌덕왕-흥덕왕-희강왕-민애왕-신무왕-문성왕-헌안왕-경문왕-헌강왕-정강왕-진성여왕-효공왕-신덕왕-경명왕-경애왕-경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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