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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고구려] 7대 차대왕(次大王)

by [悠悠自適] 2024. 1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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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7대 차대왕(次大王)
출생 71년 ~ 165년(향년 94세)
재위 146년 12월 ~ 165년 10월(18년 10개월)
가족 부인 1명, 자녀 1남

생애
유리왕의 손자이자, 태조왕의 동생이지만 나이차이가 24살 터울이다.
이름은 수성이며, 지략이 뛰어나고 병법에 능해서 전장에서 공을 세우기도 하였지만, 인자함은 적었다.
형인 태조의 총애를 받고 요직을 거치며 121년부터 국정을 도맡았다.
이후 권력을 독식하며 왕위 찬탈을 꾀하다가 146년 12월에 태조를 압박하여 상왕으로 물러앉히고, 76세에 고구려 7대 왕에 올랐다.

왕위에 오른 차대왕은 조정을 피바람으로 몰아넣었다.

147년(재위 2년) 2월, 관나부 패자 미유를 좌보를 삼고, 3월 태조왕의 측근인 우보 고복장을 죽였다.

고복장의 죽음에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애석해했다.

7월에는 좌보였던 목도루가 병을 핑계로 퇴직했고, 환나부의 어지류를 좌보로 삼았다.

10월 비류부의 양신을 중외대부로 삼고 우태의 작위를 더했다. 모두 차대왕의 오랜 벗들이었다.

 

148년(재위 3년), 차대왕은 태조왕의 장남 막근을 죽였고, 동생 막덕은 스스로 자결하였다.

그해 7월, 사냥을 나가 여우를 놓쳤는데, 좋은말로 간언한 무당을 죽였다.

165년 3월, 상왕이었던 태조왕이 119세로 생을 마감한다.

그해 10월, 연나부의 명림답부가 백성들의 고단함을 참을수 없어, 왕을 시해하면서 차대왕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차대왕(次大王)은 두번째 왕이란 뜻으로 그가 얼마나 폭정이 심했으면 묘호에도 큰 의미를 두지 않았던것 같다.

삼국사기 차대왕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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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관계(차대왕 가계도)

· 왕후 

왕후에 대한 기록은 없다.

 

· 추안 

차대왕의 맏아들.
165년 명립답부가 차대왕을 시해하자 궁을 빠져나가 숨었다. 신대왕이 즉위하여 사면령이 내리자 도성문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살려달라고 청했다.
이에 신대왕은 사면령과 녹읍을 주고, 양국군이라는 봉작도 내렸다.

차대왕 재위당시 삼국시대 연표

차대왕은 태조왕에게 왕권을 빼앗아 폭정을 가하자 명림답부에 의해 살해당했다.

모본왕에 이은 고구려 두번째 탄핵이었다.

동시대에 백제는 개루왕, 신라는 일성왕과 아달라왕이 재위하였다.

고구려 왕 계보
동명성왕-유리명왕-대무신왕-민중왕-모본왕-태조왕-차대왕-신대왕-고국천왕-산상왕-동천왕-중천왕-서천왕-봉상왕-미천왕-고국원왕-소수림왕-고국양왕-광개토대왕-장수왕-문자명왕-안장왕-안원왕-양원왕-평원왕-영양왕-영류왕-보장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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