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5대 모본왕(慕本王)
출생 ? ~ 53년
재위 48년 ~ 53년 11월(5년)
가족 부인 1명, 자녀 1남
생애
모본왕은 대무신왕의 맏아들로 이름은 해우(解憂) 또는 해애루(解愛婁)이다.
민중왕이 사망하고 48년에 고구려 5대 왕에 즉위하였다.
모본왕은 모질고 사나웠으며, 어질지 못하고 국사를 돌보지않아 백성들이 그를 원망했다고 한다.
모본왕의 어머니인 왕후가 오랫동안 아들을 낳지 못하고, 후비인 갈사왕의 손녀 해씨가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이 호동왕자였다.
호동이 총명하고 용맹하게 성장했는데, 뜻밖에 왕후가 늦은 나이에 모본왕을 낳았다.
이에 호동과 모본왕과의 왕권다툼이 시작되었는데, 왕후의 모략으로 호동이 자살하고 모본왕이 태자에 책봉된다.
49년(재위 2년) 봄, 장수를 보내 한나라의 북평, 어양, 상곡, 대원을 습격했으나 요동태수 채동이 이를 인정하고 신의로 대하자 다시 화친했다.
3월에는 폭풍으로 나무가 뽑히고, 4월에는 서리와 우박이 떨어졌다.
8월에는 사신을 뽑아 기근에 시달리는 백성들을 구휼했다.
51년, 모본왕은 평상시 사람을 깔고 앉고, 누울때 사람을 베고 누웠으며, 움직이면 죽이고, 충언하는 신하에게 활을 쏘았을 정도로 점점 포악해졌다.
53년, 이에 견디다 못한 왕의 측근인 두로가 왕을 시해했고, 모본원 지역에서 장사를 지냈으며, 시호를 모본왕이라 했다.
삼국사기 모본왕 기록
대무신왕, 모본왕 관련 기사
가족관계(모본왕 가계도)
· 왕후
왕후에 대한 기록은 없다.
· 익
'모본왕 원년인 48년 10월 왕자 익을 태자로 세웠다'라는 기록이 있다.
모본왕 재위당시 삼국시대 연표
모본왕은 성격이 포악하여 백성들의 원망을 샀고, 두로에 의해 죽음을 맞았다.
이는 우리 역사상 최초의 탄핵이 아닐까 생각한다.
동시대에 백제는 다루왕, 신라는 유리왕이 재위하였다.
고구려 왕 계보
동명성왕-유리명왕-대무신왕-민중왕-모본왕-태조왕-차대왕-신대왕-고국천왕-산상왕-동천왕-중천왕-서천왕-봉상왕-미천왕-고국원왕-소수림왕-고국양왕-광개토대왕-장수왕-문자명왕-안장왕-안원왕-양원왕-평원왕-영양왕-영류왕-보장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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