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24대 동성왕(東城王)
출생 ? ~ 501년 11월
재위 479년 11월 ~ 501년 11월(22년)
가족 부인 2명, 자녀?(삼국사기 기록에는 무령왕이 아들로 되어있으나, 정황상 무령왕은 개로왕의 아들이 가능성이 높음)
생애
동성왕은 20대 비유왕의 손자이자 22대 문주왕의 조카이다.
즉, 비유왕의 장남이 21대 개로왕이고, 차남이 22대 문주왕, 3남이 곤지인데, 곤지의 아들이 동성왕이다.
동성왕의 이름은 모대(牟大), 마모(摩牟)이며, 담력이 크고 활을 잘 쏘았다.
삼근왕이 사망하자 479년 11월, 백제 24대 왕에 올랐다.
동성왕은 462년 아버지 곤지가 왜나라에 갔을때, 어린나이에 같이 갔거나 아님 왜나라에서 태어났을것이다.
삼근왕이 사망하자 479년 11월, 백제 24대 왕에 올랐다.
482년(재위 4년) 정월, 병관좌평으로 진로를 임명하고, 내외군사의 일을 겸하게 하였다.
9월에는 말갈이 한산성을 습격해 파괴하고 민가 3백호를 노획해서 돌아갔다.
482년 정월, 동성왕은 한산성에 들어 군인과 백성들을 위로했다.
484년 2월, 동성왕은 중국 남제 태조 소도성이 고구려 장수왕을 표기대장군으로 책봉했다는 소식에, 사신을 보내 표문을 올려 속국이 되기를 청해 소도성이 허락했다.
7월, 내법좌평 사약사가 남제에 조공하려고 했으나 서해바다에서 고구려군의 방해에 의해 만나지 못했다.
485년에는 신라에 사신을 보냈다.
486년(재위 8년) 2월, 위사좌평으로 백가를 임명하고, 3월에는 남제에 조공을, 7월에는 궁성을 수리하고 우두성을 축조하였다.
488년 북위가 군대를 보내와 침공했으나 백제군에 패배하였다.
(이부분이 대륙 백제설이 나오게 된 논란의 부분이다. 삼국사기뿐 아니라 중국기록에도 남아있다.)
490년 7월, 북부지역의 15세 이상을 징발해서 사현성과 이산성을 축조하였고, 9월에는 연돌을 달솔로 임명하였다.
491년(재위 13년) 6월, 웅천의 물이 넘쳐 2백여 민가가 떠내려가고 물에 잠겼다.
또 7월에는 기근에 시달려 신라로 도망간 백성들이 6백여 가호였다.
493년 동성왕은 신라에 사신을 보내 혼인을 청했고, 신라 소지왕은 이찬 비지의 딸을 동성왕에게 시집보냈다.
494년 7월, 고구려와 신라가 살수지역에서 싸웠는데, 신라가 패하고 견아성으로 퇴각하니 고구려군이 성을 포위했다.
이에 동성왕은 3천의 군사를 보내 신라를 도와주었다.
495년(재위 17년) 8월, 고구려가 침략해 치양성을 포위하자 동성왕은 신라에 구원을 요청했다.
신라 소지왕은 장군 덕지에게 군사를 동원해 백제를 도왔고, 고구려군은 퇴각했다.
497년 5월, 병관좌평 진로가 사망하자 연돌을 병관좌평에 임명했고, 6월에는 홍수로 민가가 피해를 입었다.
498년 8월, 탐라국이 조공을 하지 않자 동성왕은 직접 정벌하기위해 무진주에 이르렀는데, 탐라국이 이를 듣고 사신을 보내 용서를 구하였다.
499년(재위 21년) 여름, 큰 가뭄으로 백성들이 기근에 시달리고, 도적들이 많아지자 신하들이 창고를 열어 백성들을 구제할것을 청했으나 동성왕은 듣지 않았다.
이에 한산 지역의 2천명의 백성이 고구려로 도망갔고, 10월에는 전염병까지 크게 돌았다.
500년 봄, 궁성 동쪽에 임류각을 세웠는데, 높이가 5장이었다.
또, 연못을 만들고 기이한 짐승을 길러 신하들이 반대했으나 동성왕은 듣지 않았다.
그리고 간언하는 자가 있을까 두려워 궁문을 닫았다.
501년(재위 23년) 정월, 수도에 늙은 노파가 여우로 변해 사라졌고, 호랑이 두 마리가 남산에서 싸웠다.
포획하려 했으나 실패하였다.
9월, 위사좌평 백가에게 가림성을 축조하고 지키게 하였는데, 백가는 병을 핑계로 가지 않으려 했으나 동성왕은 강제로 보냈다.
백가는 이를 두고 동성왕을 원망했는데, 12월 동성왕이 사냥을 나가 마포촌에서 묵었을때 동성왕을 제거하였다.
삼국사기 동성왕 기록
주요사건
· 동성왕의 결혼 동맹
493년(재위 13년) 동성왕은 신라에 사신을 보내 혼인할 왕녀를 요청했다.
이는 북쪽의 고구려(장수왕)와 말갈등의 공격에서 신라와의 동맹으로 고구려를 견제할 목적이었다.
신라 소지왕은 제의를 받아들여 이찬 비지의 딸을 동성왕에게 시집을 보낸다.
· 백가의 난과 동성왕의 죽음
동성왕은 재위기간내내 국방, 외교, 내치에 나름대로 신경쓰며 백제를 잘 운영해왔다.
하지만 동성왕 사망 2년전부터의 동성왕의 행동은 전혀 반대되는 모습을 보인다.
500년(재위 21년) 봄, 궁성 동쪽에 높이가 5장인 임류각을 만들고, 연못을 만들고 기이한 짐승을 길러서 신하들의 반대가 심했다.
이 내용은 16대 진사왕과 그 행동이 비슷하다.
391년 진사왕도 궁궐을 증축, 연못을 만들고 동산을 꾸며 기이한 새와 초목을 길렀다가 의문의 죽음을 맞이했다.
동성왕도 이와 같은 행동을 하고, 501년 위사좌평 백가에게 최후를 맞이한다.
백가는 486년(재위 8년)에 위사좌평에 임명되었고, 501년에 가림성 성주로 임명되었는데, 백가는 가림성으로 가기를 싫어했다.
그래서 동성왕을 원망했고, 동성왕이 사비 서쪽지역인 마포촌으로 사냥을 나갔을때 동성왕을 제거하였다.
가족관계(동성왕 가계도)
· 왕후
왕후에 대한 기록은 없고, 삼국사기에는 25대 무령왕이 동성왕의 둘째 아들이라고 되어 있지만, 정황상 무령왕은 개로왕의 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 후비
493년에 동성왕과 혼인한 신라 이찬 비지의 딸.
동성왕 재위당시 삼국시대 연표
동성왕은 재위기간동안 국방, 외교, 내치에도 신경을 쓰고 잘 운영했지만, 재위 후반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보이다 최후를 맞이한다.
백제 왕 계보
온조왕-다루왕-기루왕-개루왕-초고왕-구수왕-사반왕-고이왕-책계왕-분서왕-비류왕-계왕-근초고왕-근구수왕-침류왕-진사왕-아신왕-전지왕-구이신왕-비유왕-개로왕-문주왕-삼근왕-동성왕-무령왕-성왕-위덕왕-혜왕-법왕-무왕-의자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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