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25대 무령왕(武寧王)
출생 462년(무령왕릉 기록) ~ 523년 5월
재위 501년 11월 ~ 523년 5월(21년 6개월)
가족 부인 1명, 자녀 3남 1녀(?)
생애
무령왕의 이름은 사마(斯摩) 혹은 융(隆)이며, 501년 11월 동성왕이 사망하자 백제 25대 왕에 올랐다.
삼국사기에는 무령왕이 동성왕의 둘째아들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무령왕릉과 일본서기의 기록을 보면 21대 개로왕의 아들일 가능성이 높다.(개로왕편 참고)
무령왕은 키가 8척에 용모가 수려했으며, 인자하고 너그러워서 민심이 그를 따랐다.
502년(재위 2년) 정월, 좌평 백가가 가림성을 중심으로 반란을 일으켰다.
무령왕은 우두성에 주둔하고 한솔 해명에게 토벌을 명령했다.
이에 백가가 항복했는데, 그의 목을베어 백강에 던졌다.
11월, 달솔 우영에게 5천의 군사를 주고 고구려 수곡성을 공격하였다.
503년(재위 3년) 9월, 말갈이 마수책을 불지르고, 고목성을 공격하자, 무령왕은 병사 5천을 보내 퇴각시켰다.
506년 봄에는 전염병이 크게 돌고, 가뭄이 들어 백성들이 기근에 시달리자 창고를 열어 구휼하였다.
7월에는 말갈이 또 침공해와서 고목성을 격파하고 6백여명을 죽이거나 사로잡았다.
이에 507년 5월, 고목성 남쪽에 목책 두개를 세우고 장령성을 축조해 말갈의 침략에 대비했다.
그러나 10월, 고구려 고노장수가 말갈과 함께 한성을 공격하고자 횡악 아래 주둔했는데, 무령왕은 군대를 출병시켜 퇴각시켰다.
510년(재위 10년), 무령왕은 제방을 견고하게 수리하고 전국의 유식자(놀고 먹는자)들을 농사를 짓게 하였다.
512년 4월에 양나라에 조공하고, 9월 고구려가 가불성을 습격하고 원산성을 격파해 많은 백제인이 희생당하고 약탈당했다.
이에 무령왕은 용맹한 기병 3천을 이끌고 위천의 북쪽에서 전투를 벌여 고구려군을 대파해 승리했다.
521년(재위 21년) 5월에 홍수가 나고, 8월에는 곤충때문에 농사가 망치자 9백호의 백성들이 기근올 신라로 도망갔다.
11월 양나라에 조공하니 양나라 고조가 무령왕을 백제제군사 영동대장군으로 임명했다.
523년 2월, 무령왕은 한성에 행차해서 좌평 인우, 달솔 사오등에게 명령해서 한수 북쪽 15세 이상의 백성을 징발해 쌍현성을 축조했다.
이후 5월, 무령왕은 생을 마감하고 시호는 무령이라고 하였다.
삼국사기 무령왕 기록
주요사건
· 백제제군사 영동대장군 임명
521년 11월, 무령왕은 양나라에 조공하면서 "고구려를 여러차례 격파해 비로서 우호를 통하고 다시 강국이 되었습니다."라고 표문을 올렸다.
이에 양나라 고조가 조서를 내려 "멀리서 조공의 직무를 다하고 이곳까지 정성이 이르니 가상하게 생각해 백제제군사(百濟諸軍事) 영동대장군(寧東大將軍)으로 제수한다."고 하였다.
이시기에 고구려 안장왕에게는 영동장군(寧東將軍) 에 책봉하는데, 이는 무령왕보다 낮은 작위를 주었다.
· 무령왕릉의 발견
1971년 송산리 5, 6호 고분의 배수로 공사 중 우연히 발견되었다.
무령왕릉은 무덤이 통째로 지하에 있었기 때문에 오랜 세월 동안 도굴과 일제강점기의 약탈을 전혀 당하지 않은 채 온전하게 발굴되었다.
축조연대와 피장자가 분명하며 부장품이 고스란히 발견되어 삼국시대 고분 연구에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내부 묘비석에 영동대장군 백제사마왕(寧東大將軍 百濟斯麻王)이라는 피장자의 정보가 적혀 있다.
하지만, 몇 년은 걸릴 법한 발굴 조사를 17시간만에 졸속으로 끝냄으로서 최악의 발굴조사가 되었다.
가족관계(무령왕 가계도)
· 왕후
왕후에 대한 기록은 없지만, 무령왕릉 기록에서 526년 12월에 사망하여 529년 2월 왕릉에 합장된것으로 되어있다.
· 순타
무령왕의 장남이자 태자. 삼국사기 기록에는 없고, 일본서기에 513년 8월에 '백제의 태자 순타가 사망하였다'라는 기록이 남아있다.
· 성왕
백제 26대 왕. 성왕편 참고.
· 사야
사야 또한 삼국사기 기록에는 없고, 일본서기에 남아있다.
무령왕이 사아를 왜나라로 보냈고, 사아는 그곳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고, 그의 아들 법사군은 왜군의 선조라고 기록되어 있다.
· 수백향(?)
예전에 '제왕의 딸 수백향'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는데, 수백향이 무령왕의 공주라는 설정이다.
하지만 수백향이 무령왕의 공주라는 기록은 한, 중, 일 어느역사에도 기록되어 있지않다.
다만, 문정창이란 인물이 1970년에 펴낸 '일본상고사가 수백향 이야기'란 책에 나오지만 이렇다할 증거는 없다.
무령왕 재위당시 삼국시대 연표
무령왕은 한수 이북의 영토를 되찾고 정치적 안정을 이루었으며, 영토 확장과 백제 위상을 크게 높이고 62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다.
백제 왕 계보
온조왕-다루왕-기루왕-개루왕-초고왕-구수왕-사반왕-고이왕-책계왕-분서왕-비류왕-계왕-근초고왕-근구수왕-침류왕-진사왕-아신왕-전지왕-구이신왕-비유왕-개로왕-문주왕-삼근왕-동성왕-무령왕-성왕-위덕왕-혜왕-법왕-무왕-의자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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