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

[고려] 13대 선종(宣宗)

by [悠悠自適] 2026. 6. 13.
반응형

 

고려 13대 선종(宣宗)
출생 1049년 10월 15일 ~ 1094년 6월 23일
재위 1083년 12월 12일 ~ 1094년 6월 23일(10년 6개월)
가족 부인 3명, 자녀 4남3녀.

생애
고려의 제13대 왕인 선종(宣宗)의 시호는 안성사효대왕(安成思孝大王), 또는 현순관인사효대왕(顯順寬仁思孝大王).

휘는 운(運), 자는 계천(繼天).
고려 문종(제11대)의 차남이다. 

아버지가 붕어한 이후 형 순종까지 요절해버린 어지러운 상황에서 즉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재위 기간 내내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해 고려의 전성기를 지속적으로 이끌었다.
특히 북송 및 요나라와의 외교 관계에서도 시종일관 당당함을 견지하고 동아시아를 주도하는 3대 축의 역할을 충실히 소화했으며 불교와 유교의 조화를 도모해서 정치 이념의 균형을 이루었다.

1083년 12월 순종의 동생인 국원공 왕운이 전임 왕의 유언에 따라 고려 제13대 국왕 선종으로 즉위함.
1084년 4월 불교의 진흥과 유능한 인재 발굴을 위해 국가 공인 승려 선발 시험인 승과(僧科) 제도를 설치하고 시행함.
6월 국방을 강화하고 최전방 군인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북방 변경을 지키는 군사들에게 저고리와 바지를 대대적으로 하사함.
1085년 5월 선종의 동생인 교웅(대각국사 의천)이 불교 교학을 깊이 연구하고 불경을 수집하기 위해 왕실의 반대를 무릅쓰고 송나라로 유학을 떠남.


1086년 5월 요나라(거란)가 압록강 유역에 독점 교역 시장인 각장(榷場)을 설치하려 하자, 고려가 영토 침탈을 우려해 이를 강력히 반대하고 외교적으로 저지함.
6월 송나라에서 1년 2개월간 불교 세부 종파를 연구하고 3,000여 권의 불교 서적을 수집한 의천이 귀국하여 예성강에 도착함.
1087년 흥왕사에 교장도감을 설치하고, 의천의 주도하에 고려·송·요·일본의 불교 주석서를 모아 소조대장경(속장경) 간행 사업을 본격적으로 착수함.
1089년 개경 국자감의 대대적인 정비와 함께 유학 교육을 장려하고, 왕실 권위를 높이기 위해 흥왕사에 새로운 탑을 건립하는 등 대규모 토목 사업을 진행함.


1092년 7월 선종의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어 병석에 눕게 되면서, 조정의 정무를 정상적으로 돌보기 어려워짐.
1094년 6월 선종이 병을 이기지 못하고 향년 46세로 연영전에서 승하함에 따라, 그의 11세 된 어린 장남 헌종이 제14대 국왕으로 즉위하며 문벌 귀족 간의 권력 투쟁이 시작됨.

가족관계(선종 가계도)


● 정신현비 이씨
11대 문종 치세 때의 명신 이자연의 조카로 예종 대에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郎平章事)에 오른 이예의 딸이다.
사숙왕후에게는 육촌 동생이며, 시어머니인 인예왕후, 인경현비, 인절현비에게는 친정 조카가 된다.


· 연화공주(延和公主)
아버지 선종이 즉위전에 어머니 정신현비가 사망해 외가(外家)에서 자라나 연화공주(延和公主)로 책봉(冊封)되었다.
16대 예종의 제1비. 남편인 예종과는 친사촌이 된다.

● 사숙왕후 이씨
인천 이씨 출신으로 문종 대의 명신 경원군 개국공(慶源郡 開國公) 이자연의 친손녀이며 이석의 딸이다.
조선국공(朝鮮國公) 이자겸과 사촌이다.


· 헌종(14대왕)


· 수안택주(遂安宅主)
선천적인 시각장애인이었다. 

고려사에서는 태어나면서부터 눈이 보이지 않아 나이 40세에도 시집가지 못했다고 적혀있다.


· 공주

● 원신궁주 이씨
문종 대의 명신 이자연의 손녀로 아버지는 평장사(平章事) 이정이고, 이자겸과는 사촌지간이다. 
선종과 혼인하여 원희궁비(元禧宮妃)라고 불렸다.


· 한산후 왕윤(王昀)
부친 선종이 죽고 이복형 헌종이 11세의 나이로 즉위하자 문종의 아들 진한후 왕유, 정간왕의 아들 낙랑백 왕영과 더불어 수사도(守司徒)에 임명된다.


· 왕자
· 왕자

주요사건과 인물
● 대각국사 의천의 송나라 유학 및 불교 서적 수집(1085년 5월 ~ 1086년 6월)
개요 선종의 친동생인 문종의 넷째 아들 대각국사 의천이 왕실과 조정의 만류를 뿌리치고 송나라로 비밀리에 유학을 떠난 사건
내용 의천은 1085년 5월 정종의 주선으로 송나라 상인의 배를 타고 출국. 
그는 송나라 철종을 알현하고 약 1년 2개월 동안 개봉부(카이펑)와 항주(한조우) 등을 돌며 유수학승들과 교류. 
1086년 6월 귀국할 당시 화엄종, 천태종 등 다양한 종파의 불교 서적 3,000여 권을 가지고 예성강 고란도에 도착했으며, 선종은 군신을 거느리고 직접 마중 나가 동생을 환대.

● 요나라(거란)의 압록강 각장(榷場) 설치 저지 외교(1086년 5월)
개요 요나라가 고려와의 국경 지대인 압록강 유역에 공식 무역 거점인 '각장'을 설치하려 하자, 선종과 고려 조정이 강력한 외교 작전으로 이를 막아낸 사건.
내용 요나라는 경제적 이익과 국경 통제를 목적으로 압록강 야두구 지역에 각장을 세우겠다고 통보. 
고려 조정은 이를 요나라가 군사적 거점을 확보하고 고려 영토를 침탈하려는 책략으로 판단. 
선종은 요나라에 사신을 보내 "조상의 토지는 한 치도 내어줄 수 없으며, 국경에 시장을 열면 양국의 분란만 커진다"고 강력히 반대. 
끈질긴 외교적 설득 끝에 요나라의 계획을 철회시켰으며, 이는 실리 외교의 쾌거로 평가.

● 흥왕사 교장도감 설치 및 속장경(교장) 간행(1087년)
개요 의천의 건의를 받아들여 동아시아 최대의 불교 학술 사업인 '소조대장경(속장경)' 간행을 전폭적으로 지원한 사건.
내용 선종은 1087년 어머니 인예태후가 원찰로 삼았던 흥왕사에 국가 기관인 교장도감(敎藏都監)을 설치하도록 명함. 
이곳에서 의천이 송, 요, 일본, 고려 등 동아시아 전역에서 수집한 불경 주석서(교장)들을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목판으로 인쇄하기 시작. 
이 사업은 고려를 동아시아 불교 문화의 중심지로 발돋움하게 만들었으며, 선종의 적극적인 재정적·정치적 지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던 방대한 국가적 문화 사업.

● 송나라 명의 초빙 및 의료·약학 체계 정비(1091년 6월)
배경 선종은 재위 후반기에 접어들며 건강이 점차 악화. 
이에 고려 조정은 선종의 치료와 선진 의학 기술 도입을 위해 당시 의학이 가장 발달했던 송나라에 의관 파견을 공식 요청.
내용 1091년 6월, 송나라 황제 철종이 보낸 명의(명수)들과 대규모 약재가 고려 개경에 도착. 
선종은 송나라 의사들을 크게 환대하며 자신의 치료를 맡기는 한편, 이들을 통해 송나라의 선진 임상 의학과 약학 지식을 고려 국립 의료기관인 태의감(太醫監)에 전수.

선종 재위당시 연표


고려 왕 계보
태조 - 혜종 - 정종 - 광종 - 경종 - 성종 - 목종 - 현종 - 덕종 - 정종 - 문종 - 순종 - 선종 - 헌종 - 숙종 - 예종 - 인종 - 의종 - 명종 - 신종 - 희종 - 강종 - 고종 - 원종 - 충렬왕 - 충선왕 - 충숙왕 - 충혜왕 - 충목왕 - 충정왕 - 공민왕 - 우왕 - 창왕 - 공양왕

반응형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려] 15대 숙종(肅宗)  (0) 2026.06.15
[고려] 14대 헌종(獻宗)  (0) 2026.06.14
[고려] 12대 순종(順宗)  (0) 2026.06.12
[고려] 11대 문종(文宗)  (0) 2026.06.11
[고려] 10대 정종(靖宗)  (0) 2026.0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