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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고려] 21대 희종(熙宗)

by [悠悠自適] 2026. 6.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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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21대 희종(熙宗)
출생 1181년 6월 28일 ~ 1237년 9월 7일
재위 1204년 2월 14일 ~ 1212년 2월 6일(8년)
가족 부인 2명, 자녀 5남5녀.

생애
고려 21대 희종(熙宗)의 시호는 '성효대왕'(成孝大王). 휘는 처음에는 '연', 태자가 되고나서 바꾼 휘는 '덕'이었으며, 이후 다시 바꾼 휘가 '영'(韺)이다. 자는 '불피'(不陂).
20대 신종과 선정왕후의 아들이다.
무신정권기 최고 권력자였던 최충헌을 제거하려다 실패하여 폐위된 비운의 왕이다.

1204년 2월 태자 왕영이 아버지 신종의 양위를 받아 대관전에서 제21대 국왕 희종으로 즉위함.
1204년 5월 최충헌이 사병을 동원해 대대적인 인사를 단행하고, 자신의 친위 기반을 다지며 조정의 실권을 완벽히 장악함.
1205년 3월 최충헌이 문무관의 인사권을 장악하기 위해 자신의 집무실에 일종의 인사 행정 기구인 '정방(政房)'의 전신 격 체제를 정비함.
1206년 3월 희종이 최충헌을 최고 관직인 영중서선거사로 임명하고 '진강후(晉康侯)'에 봉하면서 최충헌의 권력이 왕권을 완전히 압도하게 됨.


1208년 문인 이규보가 최충헌의 발탁으로 본격적으로 중앙 정계에 등용되어 무신정권의 문학적 기반을 다지기 시작함.
1209년 5월 청교역(지금의 경기도 고양)의 관리들이 최충헌 부자를 암살하려다 미수에 그친 '청교역리의 반란 사건'이 발생함.
6월 최충헌이 암살 시도를 진압한 후, 자신을 반대하는 세력을 색출하고 국가 정보·치안을 독점하기 위해 최고 권력 기구인 교정도감(敎定都監)을 설치함.


1211년 12월 희종이 내시 왕준명 등과 짜고 수창궁으로 최충헌을 유인해 암살하려 했으나, 최충헌이 장지문 사이에 숨어 구출되면서 실패함.
1212년 2월 암살 위기에서 살아남은 최충헌이 역으로 희종을 압박하여 강제 폐위시키고 강화도로 유배 보냈으며, 명종의 아들인 강종을 새 왕으로 옹립함.

1237년 9월 폐위 후 오랜 유배 생활을 하던 희종이 대몽항쟁의 임시 수도였던 강화도 법천사에서 5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남.

가족관계(희종 가계도)


● 폐태자비 왕씨
왕씨의 아버지는 제15대 숙종의 4대손 창화후 왕우였으며, 어머니는 명종의 딸 수안궁주였다.
무신 권력자였던 최충수(최충헌의 동생)가 자신의 딸을 태자비로 앉히기 위해 강제로 폐위시켰다.

● 성평왕후 임씨
성평왕후는 고려 왕실의 일원이다. 
부계는 현종의 후손으로 정간왕계이다.

· 창원공 왕지(昌原公 王祉)
아버지가 폐위될 때 함께 쫓겨나 부안 등으로 유배를 다녔으며, 훗날 유배에서 풀려나 관직을 받았다.

· 시령후 왕위(始寧侯 王禕)
아버지가 폐위되면서 백령도로 유배를 갔다가 훗날 개경으로 복귀했다.

· 경원공 왕조(慶原公 王祚)
역시 아버지의 폐위와 함께 유배 생활을 겪었다.

· 대선사 경지(大禪師 鏡智)
무신 정권의 감시를 피해 불교 승려로 출가하여 대선사의 지위까지 올랐다.

· 충명국사 각응(冲明國師 覺膺)
형 경지와 마찬가지로 승려로 출가했고, 훗날 국사(國師)의 자리에 오른 고승이다.

· 안혜태후 왕씨(安惠太后)
고려 제23대 국왕 고종의 왕비이고, 24대 국왕 원종의 어머니이다.

· 영창공주(永昌公主)
종실인 단양백 왕서(丹陽伯 王旔)와 혼인.

· 덕창궁주(德昌宮主)
최충헌의 아들인 최전(崔塡)과 혼인.

· 가순궁주(嘉順宮主)
종실인 신안공 왕정(新安公 王廷)과 혼인.

· 정희궁주(貞禧宮主)
종실인 영녕공 왕준(永寧公 王綧)과 혼인.

주요사건과 인물
● 진강후 책봉과 최충헌의 독재 본격화(1206년 3월)
내용 희종이 무신정권의 최고 권력자인 최충헌을 최고 관직인 영중서선거사로 임명하고 공식적으로 '진강후(晉康侯)'라는 작위를 부여함.
결과 최충헌은 단순한 무신 집권자를 넘어 국왕에 준하는 독자적인 조정(흥녕부)을 개설하고 사병을 공인받는 등 무소불위의 권력을 거머쥐게 됨.
의의 국왕인 희종의 권위가 최충헌 아래로 완전히 종속되었음을 대외적으로 공포하는 계기가 됨.

● 청교역 아전들의 최충헌 암살 모의 사건(1209년 5월)
내용 개경 인근 청교역(지금의 경기 고양)의 서리(아전) 3명이 최충헌 부자를 살해하기 위해 가짜 공문서를 만들어 여러 사찰의 승려들을 규합하려다 귀법사 승려의 고발로 발각됨.
결과 최충헌은 대대적인 국문을 통해 관련자들을 색출하였으며, 무고하게 연루된 재상 한기와 장군 김남보 등 수십 명을 처형하고 추종자들을 섬으로 유배 보냄.
의의 지배층 내부뿐만 아니라 지방의 하급 관리와 종교계(승려)에까지 최충헌 독재에 대한 강력한 저항 의식이 퍼져 있었음을 보여줌.

● 교정도감 설치(1209년 6월)
내용 최충헌이 청교역 서리들의 암살 모의 사건을 대대적으로 수사하고 반대파를 색출하기 위해 임시 기구인 교정도감(敎定都監)을 설치함.
결과 사건이 해결된 후에도 기구를 없애지 않고 상설화하여, 최충헌 본인이 최고 책임자인 '교정별감' 자리를 맡아 국가의 인사, 재정, 치안 등 모든 국정을 총괄함.
의의 고려의 공식 통치 체제(2성 6부)를 완전히 무력화하고, 최씨 무신정권이 4대 60년간 고려를 지배하게 만드는 최고 절대 권력 기구가 확립됨.

● 희종의 최충헌 암살 시도와 폐위(1211년 12월)
내용 왕권 강화를 열망하던 희종이 내시 왕준명 등 친위 세력과 짜고, 수창궁(국왕의 침전)으로 최충헌을 유인하여 호위 사병들을 매복시킨 뒤 기습 암살을 시도함.
결과 문틈에 숨어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최충헌이 사병을 동원해 대궐을 장악하였으며, 암살을 모의한 승려와 내시들을 즉각 처형함.
의의 암살 직후인 1212년 2월, 최충헌이 국왕인 희종까지 강제로 폐위하여 강화도로 유배 보냄으로써 국왕의 생사탈여권마저 권신이 쥐고 흔들던 무신정권기의 막장 정치를 단적으로 증명함.

희종 재위당시 연표


고려 왕 계보
태조 - 혜종 - 정종 - 광종 - 경종 - 성종 - 목종 - 현종 - 덕종 - 정종 - 문종 - 순종 - 선종 - 헌종 - 숙종 - 예종 - 인종 - 의종 - 명종 - 신종 - 희종 - 강종 - 고종 - 원종 - 충렬왕 - 충선왕 - 충숙왕 - 충혜왕 - 충목왕 - 충정왕 - 공민왕 - 우왕 - 창왕 - 공양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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