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 34대 공양왕(恭讓王)
출생 1345년 3월 17일 ~ 1394년 5월 25일
재위 1389년 12월 10일 ~ 1392년 8월 8일(2년 7개월)
가족 부인 1명, 자녀 1남3녀.
생애
고려 34대 공양왕(恭讓王)의 본명은 왕요(王瑤)이며 신종의 7대손으로, 본래 왕위 계승과 거리가 먼 정창군(定昌君)이었다.
형의 딸이 이성계의 아들(이방번)과 혼인한 덕에 이성계와 사돈 관계이기도 했다.
1389년 이성계 일파가 '폐가입진(가짜를 폐하고 진짜를 세운다)'을 내세워 창왕을 폐위한 후, 정통성 있는 왕씨 종친 중 다루기 쉬운 그를 강제로 왕위에 앉혔다.
1389년 11월 이성계 일파가 창왕을 폐위한 후, 정통성 있는 왕실 종친 정창군 왕요(공양왕)를 허수아비 왕으로 즉위시킴.
1390년 6월 공양왕의 세 딸(숙녕궁주, 정신궁주, 경화궁주)을 정식으로 궁주에 책봉하며 왕실의 외연 체제를 정비함.
1391년 5월 조준 등의 사전 개혁 상소를 바탕으로 권문세족의 농장을 몰수하고 신진사대부의 경제적 기반이 된 과전법을 공포함.
1392년 4월 이성계의 낙마를 계기로 정몽주가 반격을 시도했으나, 결국 개경 선죽교에서 이방원 세력에게 피살되며 고려 왕실의 마지막 버팀목이 사라짐.
1392년 7월 이성계 일파의 도당(조정)이 대비의교지를 받아 공양왕을 강제로 폐위하고 원주로 유배 보내며 고려 왕조가 실질적으로 막을 내림.
8월 이성계가 개경 수창궁에서 백관의 추대를 받아 왕위에 오르며 474년 역사의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건국됨.
가족관계(공양왕 가계도)

● 순비 노씨(順妃 盧氏)
본관은 교하(交河)이며, 문하찬성사를 지낸 노책(盧頙)의 딸이다.
공양왕이 즉위한 지 1년 후인 1390년에 순비(順妃)로 책봉되었다.
1392년 이성계 세력에 의해 고려가 멸망하면서 공양왕과 함께 원주, 간성 등으로 유배를 떠났다.
1394년 유배지인 삼척에서 남편 공양왕, 아들 왕석과 함께 이성계 일파에 의해 시해당하며 비장하게 생을 마감했다.
· 정성군 왕석(定城君 王奭)
공양왕이 즉위한 직후인 1389년 11월에 세자로 책봉되었으며, 정성군(定城君)에 봉해졌다.
군사 정변으로 쫓겨난 전임 임금 창왕의 딸과 혼인하려 했으나, 창왕이 이성계 일파에게 시해당하면서 결혼이 무산되었다.
1392년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면서 세자 신분을 잃었고, 부모와 함께 강원도 간성 등으로 유배되었다.
1394년 유배지인 삼척에서 아버지 공양왕과 함께 이성계 세력에 의해 시해당하며 젋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 숙녕궁주(肅寧宮主)
공양왕이 즉위한 후인 1390년 6월, 동생들과 함께 정식으로 궁주(宮主)에 책봉되었다.
종친인 익성부원군 왕서의 아들 익천군 왕집(王緝)과 혼인하였다.
고려가 멸망한 후, 숙녕궁주는 이미 출가한 상태였기 때문에, 부모처럼 직접적인 참변을 당하지는 않았다.
· 정신궁주(貞信宮主)
공양왕이 즉위한 후인 1390년 6월, 자매들과 함께 정식으로 궁주(宮主)에 책봉되었다.
남의 유력한 명문 사대부 가문인 단양 우씨 집안의 우성범(禹成範)과 혼인하였다.
1392년 고려가 멸망하자 남편 우성범은 사위라는 이유로 이성계 일파에게 모반 혐의를 뒤집어쓰고 개경 강가에서 처형당했다.
남편을 잃은 정신궁주는 가문이 몰락하는 비극을 겪었으나, 조선 태조 이성계가 고려 왕실 여성들을 보호하는 조치를 내리면서 목숨을 건졌다.
· 경화궁주(敬和宮主)
공양왕 즉위 후인 1390년 6월, 언니들과 함께 정식으로 궁주(宮主)에 책봉되었다.
전통 무신 명문가인 칠원 윤씨 집안의 윤번(尹藩)과 혼인하였다.
처형당한 둘째 형부(우성범)와 달리, 남편 윤번은 조선 건국 이후에도 목숨을 부지하고 가문을 이어갔다.
경화궁주와 윤번 부부의 후손들은 조선 시대에도 중앙 정계에 진출하였으며, 남편 윤번의 가문은 조선 중기 이후 유력 사대부 가문으로 자리 잡게된다.
주요사건과 인물
● 과전법 제정 및 공포(1391년 5월)
내용 이성계 일파와 신진사대부가 권문세족의 토지 독점을 완전히 타파하고 국가 재정을 확충하기 위해, 기존의 모든 토지 문서를 개경 한복판에서 불태우고 새로운 토지 제도인 과전법을 단행함.
결과 권문세족의 경제적 기반이 완전히 해체되었으며, 경기 지역의 토지를 중심으로 신진사대부 관료들에게 직급에 따라 합법적인 수조권(세금을 거둘 권리)을 나누어 줌.
의의 고려 사회의 해묵은 토지 부패를 원천적으로 척결하였고, 농민들의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새 왕조 조선을 건국하기 위한 확고한 경제적 기반과 물적 토대를 마련함.
● 선죽교 참변(정몽주 피살, 1392년 4월)
내용 이성계가 사냥 중 낙마하여 부상을 입자, 공양왕과 수문하시중 정몽주가 이 기회를 틈타 이성계 일파인 조준, 남은 등을 유배 보내며 반격을 시도했으나 정몽주가 이성계의 문병을 다녀오던 길에 이방원의 심복 조영규 등에게 습격을 당함.
결과 고려의 마지막 버팀목이자 신진사대부의 온건파 영수였던 정몽주가 개경 선죽교에서 철퇴를 맞고 잔인하게 피살되었으며, 이로 인해 온건 개혁파 세력이 완전히 궤멸됨.
의의 고려 왕실을 수호하려던 유일한 정치·정신적 구심점이 사라지면서 공양왕은 완벽하게 고립되었고, 혁명파 사대부들의 역성혁명(조선 건국) 세력이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폭주하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됨.
● 공양왕 폐위와 고려의 멸망(1392년 7월)
내용 정몽주 사후 조정을 완벽히 장악한 배극렴, 조준 등 이성계 일파가 공양왕을 협박하여 왕위에서 물러나게 하고, 공민왕의 비(妃)인 정비 안씨를 압박하여 공양왕을 폐위하고 이성계에게 국새를 넘기도록 하는 교지를 내리게 함.
결과 공양왕은 즉위 2년 8개월 만에 폐위되어 공양군으로 강등된 채 강원도 원주로 유배를 떠났으며, 뒤이어 8월 이성계가 수창궁에서 즉위함으로써 474년간 이어져 온 고려 왕조가 공식적으로 종말을 고함.
의의 무신정권과 몽골의 침략 등 수많은 위기를 버텨온 고려 왕조의 문이 닫히고, 성리학적 이념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한반도의 왕조인 '조선'이 탄막을 올리는 역사적 대전환점이 됨.
공양왕 재위당시 연표

고려 왕 계보
태조 - 혜종 - 정종 - 광종 - 경종 - 성종 - 목종 - 현종 - 덕종 - 정종 - 문종 - 순종 - 선종 - 헌종 - 숙종 - 예종 - 인종 - 의종 - 명종 - 신종 - 희종 - 강종 - 고종 - 원종 - 충렬왕 - 충선왕 - 충숙왕 - 충혜왕 - 충목왕 - 충정왕 - 공민왕 - 우왕 - 창왕 - 공양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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