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 32대 우왕(禑王)
출생 1365년 8월 2일 ~ 1390년 1월 8일
재위 1374년 11월 7일 ~ 1388년 7월 19일(13년 8개월)
가족 부인 12명, 자녀 1남.
생애
고려 32대 우왕(禑王)은 폐위되어 묘호와 시호가 없다. 휘는 '우'(禑).
공민왕과 승려 신돈의 시비(여종)였던 반야 사이에서 태어났고, 어릴 적 이름은 '모니노'였다.
신돈의 집에서 자란 탓에 즉위 초부터 "왕씨가 아니라 신돈의 아들(辛禑)"이라는 의심과 정통성 시비에 평생 시달렸다.
후대 조선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편찬된 《고려사》에는 왕이 아닌 반역자 열전(신우)에 기록되었다.
1374년 공민왕이 시해당한 뒤, 권신 이인임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10세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1374년 11월 우왕이 이인임의 옹립을 받아 10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하며 권문세족이 정권을 장악하는 계기가 됨.
1375년 6월 심양에 유배되어 있던 신돈의 비첩이자 우왕의 생모인 반야가 궁에 들어가 자신이 왕의 친모임을 주장하다가 강물에 던져져 살해당함.
1376년 8월 최영이 충청도 홍산에 침입한 왜구를 상대로 큰 승리를 거두며 왜구 격퇴의 영웅으로 떠오름(홍산대첩).
1377년 10월 청주 흥덕사에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인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직지)의 인쇄가 완료됨.
1380년 9월 이성계가 전라북도 남원 황산에서 아지발도가 이끄는 대규모 왜구 세력을 완전히 섬멸하며 명성을 떨침(황산대첩).
11월 최무선이 자신이 개발한 화약과 화포를 처음으로 실전에 배치하여 금강 하구에 침입한 왜선 500여 척을 격침함(진포대첩).
1383년 9월 이성계가 함경도에 침입한 여진족 장수 호바투의 군대를 길주에서 격파하며 동북면의 영토 안정을 다짐.
1388년 1월 우왕이 최영, 이성계와 손을 잡고 수십 년간 정권을 농단하던 권신 이인임과 임견미, 염흥방 일파를 전격 숙청함.
3월 명나라가 고려의 철령 이북 영토를 자신들의 직할령으로 삼겠다는 철령위 설치를 통보해 오자, 우왕과 최영이 요동 정벌을 결의함.
6월 요동 정벌군을 이끌고 압록강까지 갔던 이성계가 군사를 돌려 개경을 함락하고 최영을 제거함(위화도 회군).
7월 위화도 회군으로 조정의 권력을 장악한 이성계 일파에 의해 우왕이 강제로 폐위되어 강화도로 유배됨.
폐위된 우왕이 강화도로 유배를 떠나고, 그의 9세 아들 창왕이 즉위함.
11월 이성계 일파가 우왕을 개경과 더 가까운 여주(영릉 부근)로 이배(유배지를 옮김)하여 감시를 더욱 강화함.
1389년 11월 밀직부사 김저와 정득후가 여주의 우왕을 찾아가 복위를 도모하고 이성계 암살을 시도했으나, 사전에 발각되어 실패함(우왕 복위 미수 사건).
이성계 일파가 복위 시도 사건을 빌미로 "우왕과 창왕은 왕씨가 아니라 신돈의 자손"이라는 논리(폐가입진)를 내세워 창왕을 폐위하고 공양왕을 옹립함.
신변의 위협을 느낀 이성계 세력에 의해 우왕은 다시 강릉으로 격리 유배됨.
12월 공양왕의 명을 받은 서균형 등에 의해 강릉 유배지에서 처형(참수 혹은 사약)당하며 향년 24세로 비장하게 생을 마감함(같은 날 아들 창왕도 강화도에서 함께 처형됨).
가족관계(우왕 가계도)

● 근비 이씨(謹妃 李氏)
고려 말의 막강한 권신이었던 이인임의 조카이자, 판삼사사 이림(李琳)의 딸이다.
이인임 일파가 정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 1379년 궁으로 들였으며, 1381년 정식으로 근비(謹妃)에 책봉되었다.
근비가 우왕의 유일한 후계자인 창왕을 출산(1380년)하면서 친정 가문은 전무후무한 영예를 누렸다.
훗날 이성계 일파가 "우왕과 창왕은 왕씨가 아니라 신돈의 자손(辛氏)이다"라는 폐가입진(廢假立眞) 명분을 내세워, 남편과 아들이 살해당한 후 근비 이씨는 사가(친가)로 쫓겨났다.
친정아버지 이림은 유배지에서 사망했고 가문은 완전히 멸문지화를 당했다.
· 왕창(33대 창왕)
● 영비 최씨(寧妃 崔氏)
최영 장군의 서녀(서출 딸)로 태어났다.
우왕이 최영을 정계 전면으로 등용하면서 그의 딸을 영비(寧妃)로 맞이했다.
우왕은 영비를 위해 호화로운 궁궐을 짓고 사냥이나 이동 시 늘 함께 다녔으며, 그녀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들어줄 정도였다.
위화도 회군으로 최영 장군이 처형되고 우왕이 폐위되자, 다른 후궁들은 모두 쫓겨났으나 영비만은 의리를 지키며 우왕의 유배 길(강화도, 여주 등)을 끝까지 동행하며 수발을 들었다.
1389년 우왕이 강릉에서 처형당한 뒤, 영비는 홀로 살아남아 사가(친가)로 돌려보내졌으나 가문이 이미 몰락하여 비참한 말년을 보냈다.
● 의비 노씨(毅妃 盧氏)
전라도 장흥 출신의 노영홍(盧英宏)의 딸로, 처음에는 궁인(시녀)으로 들어왔으나 우왕의 눈에 들어 총애를 받았다.
우왕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의비(毅妃)로 책봉되었고, 그녀의 친정아버지 노영홍은 딸 덕분에 제효공(齊孝公)이라는 높은 벼슬을 얻었다.
위화도 회군으로 우왕이 폐위되자마자, 근비와 영비를 제외한 다른 후궁들과 함께 궁에서 강제로 쫓겨나(폐출) 평민으로 떨어지는 비극을 맞이했다.
● 숙비 최씨(淑妃 崔氏)
동지밀직사사 최공철의 딸로 1384년에 책봉되었다.
우왕이 그녀의 미모를 아껴 늘 곁에 두었으나, 위화도 회군 이후 즉시 폐출당했다.
● 안비 강씨(安妃 康氏)
무장 강인부의 딸로 1384년에 왕비가 되었다.
가문이 군사력을 가진 집안이었으나 우왕의 몰락과 함께 가문도 쇠퇴하였고, 그녀 역시 폐위되었다.
● 정비 신씨(正妃 申氏)
밀직상서 신아(申雅)의 딸로 1385년에 책봉되었다.
혼인 직후 친정아버지가 높은 관직에 올랐으나, 3년 만에 우왕이 폐위되면서 친정과 함께 몰락했다.
● 덕비 조씨(德妃 趙氏)
찬성사 조영길의 딸로 1385년에 왕비가 되었다.
우왕이 조영길의 권세를 빌리기 위해 맞이한 정략결혼의 희생양으로, 폐위 후 사가로 쫓겨났다.
● 선비 최씨(善妃 崔氏)
밀직부사 최덕림의 딸로 1387년에 책봉되었다.
우왕 임기 말년에 들어온 왕비로, 혼인한 지 불과 1년 만에 위화도 회군이 일어나 궁에서 쫓겨났다.
● 현비 안씨(賢妃 安氏)
판서 안숙로의 딸로 1387년에 가장 마지막으로 책봉된 왕비이다.
우왕이 폐위되기 직전까지 총애했으나, 왕조의 몰락을 막지 못하고 함께 폐출되었다.
● 명순옹주 강씨(明順翁주 康氏)
강윤충의 딸이자 본래 정비(공민왕의 비)의 여종 출신이었다.
신분은 낮았으나 우왕의 총애를 받아 옹주가 되었고, 우왕이 유배될 때 근비·영비와 함께 일시적으로 동행이 허락되기도 했다.
● 화순옹주(和順翁主)
기생 출신으로 본명은 '칠점생(七點仙)'이었다.
우왕이 가무에 빠져 지내던 시절 궁으로 가마를 보내 맞아들였으며, 우왕 폐위 후 가장 먼저 궁 밖으로 축출되었다.
● 영선옹주(寧善翁主)
기생 출신으로 본명은 '영비(燕妃)'였다.
화순옹주와 마찬가지로 우왕의 향락 정치 시기에 총애를 받았으나, 위화도 회군 이후 무참히 폐출당했다.
주요사건과 인물
● 홍산대첩(1376년 8월)
내용 왜구가 충청도 홍산(부여)까지 깊숙이 침입하자, 노장 최영이 직접 군사를 이끌고 나아가 적의 중심부를 타격함.
결과 최영이 입술에 화살을 맞는 부상을 당하면서도 적장 아지발도의 군대를 궤멸시키며 왜구를 완전히 격퇴함.
의의 고려 군대의 사기를 크게 올렸으며, 최영 장군이 고려의 영웅이자 구국공신으로 급부상하여 정계의 핵심으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됨.
● 《직지심체요절》 간행(1377년 10월)
내용 백운화상(白雲和尚)이 석가모니와 역대 조사들의 법어를 모아 편찬한 불교 서적을, 그의 제자들이 청주 흥덕사(興德寺)에서 금속활자로 인쇄함.
결과 상·하 2권으로 나누어 발행되었으며, 당시 고려의 뛰어난 활자 주조 기술과 인쇄술을 바탕으로 금속활자본 인쇄를 성공적으로 완료함.
의의 독일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본보다 78년이나 앞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물로 공인받았으며, 인류 인쇄 문화 역사에 고려의 독창성과 기술적 우수성을 전 세계에 증명함.
● 황산대첩(1380년 9월)
내용 아지발도가 이끄는 대규모 왜구 세력이 호남과 영남 일대를 약탈하자, 이성계가 삼도도순찰사로 임명되어 남원 황산에서 격돌함.
결과 이성계가 화살로 아지발도의 투구 끈을 맞춰 투구를 벗기고, 뒤이어 이두란이 장수를 사살하면서 적들을 완전히 섬멸함.
의의 왜구의 주력 부대를 소탕하여 남부 지방을 안정시켰으며, 변방의 장수였던 이성계가 전 국민적인 영웅으로 떠올라 조선 건국의 군사적 기반을 다짐.
● 진포대첩(1380년 11월)
내용 왜구의 배 500여 척이 금강 하구의 진포(군산)에 집결하자, 고려 조정이 최무선 등을 파견하여 새로 개발한 화포를 실전에 배치함.
결과 최무선이 만든 화통도감의 화약 무기를 장착한 전함들이 화공을 펼쳐 왜선 500여 척을 모두 불태우고 침입한 왜구를 전멸시킴.
의의 세계 역사상 최초의 함포 해전이자 고려가 독자적인 화약 무기 제조 기술을 증명한 사건으로, 이후 왜구의 해상 침입을 원천 봉쇄하는 전환점이 됨.
● 위화도 회군과 우왕 폐위(1388년 6월~7월)
내용 명나라의 철령위 설치 통보에 반발해 우왕과 최영이 요동 정벌을 단행했으나, 군사를 이끌고 압록강 위화도에 도달한 이성계가 4불가론을 내세우며 군대를 되돌림.
결과 개경으로 진격한 이성계 군대가 최영의 수비대를 격파하고 개경을 함락했으며, 최영을 유배 보낸 뒤 우왕을 강제로 폐위함.
의의 권문세족과 영웅 최영의 시대가 저물고 이성계 등 신흥 무인 세력과 신진사대부가 정권을 장악하여, 고려 왕조의 멸망과 조선 건국의 결정적인 계기가 됨.
우왕 재위당시 연표

고려 왕 계보
태조 - 혜종 - 정종 - 광종 - 경종 - 성종 - 목종 - 현종 - 덕종 - 정종 - 문종 - 순종 - 선종 - 헌종 - 숙종 - 예종 - 인종 - 의종 - 명종 - 신종 - 희종 - 강종 - 고종 - 원종 - 충렬왕 - 충선왕 - 충숙왕 - 충혜왕 - 충목왕 - 충정왕 - 공민왕 - 우왕 - 창왕 - 공양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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