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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신라] 4대 탈해 이사금(脫解 尼師今)

by [悠悠自適] 2025. 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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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4대 탈해 이사금(脫解 尼師今)
출생 B.C 19년 ~ 80년 8월
재위 57년 10월 ~ 80년 8월(22년 10개월)
가족 부인 1명, 자녀 2남

생애
탈해 이사금은 성은 석(昔)씨이고, 2대 남해 차차웅의 사위이며, 왕비는 아효부인(2대 남해 차차웅의 딸)이다.
왜나라 동북쪽 천리 떨어진 다파나국(多婆那國)에서 태어났다.
다파나국왕이 여국왕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여 7년만에 큰 알을 낳았다.
왕은 사람이 알을 낳는것은 상서로운 일이 아니니 버리라고 했지만, 왕비는 차마 그러지 못하고 알을 궤짝에 넣어 바다에 띄워 보냈다.

그러다 금관국 해변을 거쳐서, 진한의 아진포에 도착했을때가 혁거세 재위 39년이었다.
당시 해변의 노파가 궤짝을 열었더니 어린아이가 있었고, 노파가 그 아이를 양육했다.
아이가 장성하여 9척신장에 풍채가 빼어났고, 활달했으며 지식이 뛰어났다.
혹자가 처음 궤짝이 왔을때 까치 한마리가 울며 그를 따랐기에, 까치 작(鵲)자에서 석'(昔)을 성씨로 삼고, 궤짝을 풀고 나왔으니 탈해(脫解)라고 이름을 지었다.

탈해는 어부일을 하면서 모친을 공양하고 부지런했다.
모친은 "너는 비상한 인물로 외모가 특별하니 학문을 하고 공을 세워 이름을 떨치도록 해라."
이때부터 학문에 정진하고 지리학도 습득하였다.
양산지역에서 호공의 집을 보고는 길지라고 생각해서, 계략을 꾸며 그의 집을 빼앗아 살았다.
후에 그곳은 경주 월성(月城)이 되었다.

8년(남해왕 재위 5년)에 탈해가 현명하다는 소문을 듣고 남해 차차웅은 딸을 탈해에게 시집보냈고, 2년후 그를 대보로 등용하여 정사를 맡겼다.
3대 유리 차차웅이 죽음을 앞두고 "선왕(남해 차차웅)께서 아들과 사위중에 연장자이며, 현명한 사람이 왕위를 이어야 한다."고 했으니, 본인 다음은 마땅히 탈해에게 왕위를 전한다.
57년 10월, 유리 차차웅이 사망하고, 신라 4대 왕에 올랐다.

58년(재위 2년) 1월, 호공을 대보로 임명하고, 2월에 시조묘에 제사를 지냈다.
59년 3월, 왕이 토함산에 올랐는데, 검은 구름이 왕의 머리위에서 오래 떠있다가 흩어졌다.
5월에는 왜나라와 우호를 맺고 사신을 교환했고, 6월에는 혜성이 나타났다.
61년 8월, 마한의 장수 맹소가 복암성을 바치며 항복했다.

63년(재위 7년) 10월, 백제 다루왕이 영토를 개척하여 낭자곡성에 이르러 사신을 파견해 만나기를 청했으나 왕은 응하지 않았다.
64년 8월, 백제가 군사를 보내 와산성을 공격했고, 10월에는 구양성을 공격하니 기마병 2천을 보내 그들을 쫒아냈다.
12월에는 지진이 일어났고, 눈이 오지 않았다.

65년(재위 9년) 3월, 알지(閼智)를 양자로 입양했다.

66년(재위 10년), 백제가 침공해 와산성을 빼앗고, 2백명으로 지키게 했으나 다시 신라가 빼앗았다.
67년 1월, 박씨는 왕족으로 국가안의 주와 군을 나누어 다스리게 하고, 그들을 주주(州主)와 군주(郡主)라고 불렀다.
2월에는 순정을 이벌찬으로 삼아 정사를 맡겼다.
70년, 백제가 침공해 왔다.

73년(재위 17년), 왜놈들이 목출도를 침략해 왕이 각간 우오를 보내 방어하게 했으나 패배하고 우오가 전사했다.
74년 8월, 백제가 국경을 침공하여 군대를 보내 막았다.
75년, 큰 가뭄으로 백성들이 기근에 시달리자 창고를 열어 구휼했고, 10월에 백제가 서쪽 와산성을 공격해 빼앗았다.
76년 9월, 군사를 파견해 백제를 정벌, 와산성을 수복하고 백제에서 와서 거주하던 2백명을 모두 죽였다.

77년(재위 21년) 8월, 아찬 길문과 가야 군대가 황산진 어귀에서 전투를 벌여 1천여 수급을 노획했다.
길문을 파진찬으로 삼고 공적을 포상했다.
79년 2월, 혜성이 동방에 나타났고, 북쪽에서도 나타나 20여일만에 사라졌다.
80년 4월, 도성에 태풍이 불어 금성 동문이 붕괴되었고, 8월에 왕이 생을 마감했다.
성 북쪽 양정(壤井)의 언덕에서 장사를 지냈다.

삼국사기 탈해 이사금 기록

 

주요사건
· 신라 김씨 왕가의 시조 김알지(金閼智)
65년(재위 9년) 3월, 왕이 금성 서쪽의 시림(始林) 나무에서 닭의 울음소리가 나서, 호공을 보내 살펴보니 금색의 궤짝이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었고, 그 아래에 흰 닭이 울고 있었다.
왕이 사람을 보내 가져와서 열었더니 남자아이가 있었는데, 용모가 기이하고 위용이 있었다.
왕이 기뻐하며, 하늘이 나에게 아들을 보내준것이라고 거두어 양육했다.
그가 장성하자 총명하고 지략이 많았고, 그래서 이름을 알지(閼智)라고 했고, 금색 궤짝에서 나와 성씨를 김(金)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가 발견된 시림(始林)의 이름을 계림(鷄林)으로 고치고 국호로 삼았다.

· 난생설화(卵生說話)
나라의 시조나 영웅의 탄생을 신비화하고 초인적인 권위를 부여하기 위하여, 시조나 영웅이 알에서 태어났다고 전하는 민족 설화이다.
백제를 제외하고, 고구려 시조인 동명성왕 고주몽, 신라 시조인 박혁거세, 4대왕 탈해 이사금, 가야 시조인 김수로왕, 모두 알에서 태어났다.
'알'은 태양을 상징하는 것으로, 천손사상과 관계가 있다고 보기도 한다.

가족관계(탈해 이사금 가계도)

· 왕후 아효부인
2대 남해 차차웅의 딸.

· 구추
신라 9대 벌휴왕의 아버지, 혹은 후손

· 알지
탈해 이사금의 양자.

탈해 이사금 재위당시 삼국시대 연표


탈해 이사금은 처남인 유리 이사금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지만, 다음 왕위는 유리 이사금의 아들인 파사가 이어받았다.
탈해 이사금때부터 백제와 왜나라의 침략이 시작되었고, 이후 백제와 신라의 악연이 시작된다.
동시대에 고구려는 태조왕, 백제는 다루왕, 기루왕이 재위하였다.

신라 왕 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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