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5대 파사 이사금(婆娑 尼師今)
출생 ? ~ 112년 10월
재위 80년 8월 ~ 112년 10월(32년 2개월)
가족 부인 1명, 자녀 1남
생애
파사 이사금은 3대 유리 이사금의 둘째 아들이다.(혹은 유리왕의 아우 내노의 아들)
80년 8월, 탈해 이사금이 사망하자 신라 5대 왕에 올랐다.
처음에 유리 이사금의 장남이자 태자인 일성(7대 왕)이 왕위를 이으려고 했으나, 위엄과 현명함이 파사에 미치지 못하여 파사를 왕으로 옹립했다.
파사는 근검절약하고 아끼며 백성들을 사랑하니 모든 사람이 그를 칭송했다.
81년(재위 2년) 2월, 시조 사당에 제사를 지냈고, 3월에는 전국을 순행하며 백성들을 위무하고 창고를 열어 구휼했다.
또, 죄수들을 구분해 두가지 죽을 죄가 아니면 풀어주었다.
82년 정월, 파사왕은 "나라의 곳간이 비었고, 병장기는 무뎌져 있다. 만일 홍수나 가뭄이 일어나거나, 변방에 변고가 있으면 어찌 막을 수 있겠는가?
해당 부서는 농사와 양잠을 권장하고, 병기를 다듬어 대비하라"고 말하였다.
84년(재위 5년) 2월, 명선을 이찬으로 삼고, 윤량을 파진찬으로 삼았다.
5월에는 고타군의 군주가 푸른 소를 바쳤고, 남신현의 보리가 연이어 자라났다.
풍년이 들어서 길을 떠나는 사람들이 식량을 휴대하지 않았다.
85년 정월, 백제가 변방을 침범했고, 2월에는 길원을 아찬으로 삼았다.
87년(재위 8년) 파사왕은 "짐이 부족한데도 신라의 왕으로 있다.
서쪽으로는 백제가 남쪽으로는 가야가 있는데, 백성들을 덕으로 편안하게 하지 못했다.
또, 백제와 가야를 위엄으로 두렵게 하기에는 부족하니 성과 보루를 보수하고 침범에 대비하라."고 말하였다.
이에 가소와 마두 두곳에 성을 축조했다.
90년(재위 11년) 정월, 사신 10명을 나누어 파견해 주주와 군주를 염찰하여, 업무를 부지런하지 않거나 경작지 다수를 황폐하게 만든 자들을 파직시켰다.
93년 정월, 윤량을 이찬으로 계기를 파진찬으로 임명했다.
2월, 고소부리군으로 순행을 나가 친히 노인들을 방문하고 곡식을 하사했다.
10월에는 도읍에 지진이 일어났다.
94년(재위 15년) 2월, 가야 군대가 마두성을 포위해서 아찬 길원과 1천의 군사를 파병해 격퇴시켰다.
8월, 알천에서 군대를 사열했다.
96년 7월, 남쪽에서 폭풍이 쳐서 금성 남쪽 큰 나무가 뽑혔다.
9월, 가야 군대가 남쪽 변방을 습격해 가성의 성주 장세를 보내 그들을 막게 했으나 적군에게 죽임을 당했다.
이에 파사왕이 용맹한 군사 5천을 거느리고 출전해 그들을 물리치고 사로잡은 적이 매우 많았다.
97년(재위 18년) 정월, 가야를 정벌하고 군사를 일으켰으나 가야 국왕이 사신을 보내 죄를 청해서 중지하였다.
98년에는 도읍에 가뭄이 들었다.
100년 7월, 우박이 내려 새가 죽고, 10월에는 지진이 나서 민가가 무너지고 죽은자들이 있었다.
101년 2월, 월성을 축조하고, 7월에 왕의 거처를 월성으로 옮겼다.
102년(재위 23년) 8월, 음즙벌국과 실질곡국이 강역을 다투다가 파사왕에게 결정해 주기를 청했다.
파사왕은 난감해하며, "금관국 수로왕은 연륜이 있어 지식이 많다."며 그를 불러 물었다.
수로왕이 의논하여 다툼이 있는 지역을 음즙벌국에 귀속하게 했다.
이에 왕이 6부에 명해 수로왕을 위한 향연을 베풀게 했는데, 5부는 이찬이 주관했으나 한기부만 낮은 지위에 있는자가 주관했다.
그러자 파사왕이 노해서 탐하리에게 명하여 한기부 주관자 보제를 죽이고 돌아갔다.
보제의 종이 도망가 음즙벌국의 우두머리 타추간의 집에 의탁했는데, 사람을 보내 그 종을 보내하고 했으나 타추가 보내지 않았다.
그러자 군대를 보내 음즙벌국을 정벌하니, 타추와 무리들이 항복했다.
이 상황을 본 실직과 압독, 두나라 왕이 와서 항복했다.
104년(재위 25년) 정월, 유성이 비처럼 떨어졌으나 땅에 이르지는 않았다.
7월, 실직이 모반을 일으켜 병력을 징발하니 그들을 토벌하여 평정하고, 남은 무리들은 남쪽 변방으로 이주시켰다.
105년 정월, 백제가 사신을 보내 화친을 요청했고, 2월에는 눈이 3척 가량이나 내렸다.
106년 정월, 왕이 압독에 행차하여 가난하고 궁핍한 백성들을 진휼했고, 8월에는 마두성 성주에게 명하여 가야를 정벌하게 했다.
108년(재위 29년) 5월, 홍수로 백성들이 기근에 시달리자 사신을 뽑아 10도에 보내고 창고를 열어 곡식을 나누어주며 진휼했다.
또, 군사를 보내 비지국, 다벌국, 초팔국을 정벌하여 그들을 병합했다.
109년, 황충이 일어 곡식들이 피해를 입었고, 왕이 산천에 제사를 지내고 재앙이 물러나기를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니 황충이 없어지고 풍년이 들었다.
111년 4월, 성문이 스스로 무너지고, 5월부터 7월까지 비가 오지 않았다.
112년 10월, 파사 이사금이 생을 마감했고, 사릉원안에서 장사를 지냈다.
삼국사기 파사 이사금 기록
주요사건
· 가야 김수로왕의 등장
삼국사기 102년 8월, 음즙벌국과 실질곡국이 국경문제로 다툼이 일어났는데, 파사왕은 가야 김수로왕에게 지혜를 구했다는 기록이 있다.
김수로왕은 김해김씨의 시조로 김해지역에 가야국을 세웠다.
그의 탄생과 치적에 관하여는 <삼국유사>에 실린 가락국기에 전해지고 있다.
아직 나라가 없던 때 가락지역에서는 주민들이 각 촌락별로 나뉘어 생활하고 있었다.
42년 3월 하늘의 명을 받아 가락국의 수백 명이 구지봉에 올라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춤을 추면서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그렇지 않으면 구워 먹으리라"라고 노래했다.
그랬더니 하늘에서 붉은 보자기에 싸인 금빛 그릇이 내려왔는데, 그 속에 둥근 황금색의 알이 6개 있었다.
12일이 지난 뒤 이 알에서 태어난 사내아이들 가운데 키가 9척이며 제일 먼저 사람으로 변한 것이 수로였다.
주민들은 그를 가락국의 왕으로 받들었고 나머지 아이들도 각각 5가야의 왕이 되었다.
즉위 후 관직을 정비하고 도읍을 정하여 국가의 기틀을 확립했다.
가족관계(파사 이사금 가계도)
· 왕후 사성부인
김알지의 손녀
· 지마
신라 6대 왕. 지마 이사금편 참고.
파사 이사금 재위당시 삼국시대 연표
파사 이사금은 형이자 태자인 일성(7대 왕)보다 위엄과 현명하다고 해서 먼저 왕위에 올랐다.
그래서 재위기간동안 백성들을 위하는 정책을 하면서 외교에 대해서도 잘 대응하였다.
동시대에 고구려는 태조왕이 백제는 기루왕이 재위하였다.
신라 왕 계보
혁거세 거서간-남해 차차웅-유리 이사금-탈해 이사금-파사 이사금-지마 이사금-일성 이사금-아달라 이사금-벌휴 이사금-내해 이사금-조분 이사금-첨해 이사금-미추 이사금-유례 이사금-기림 이사금-흘해 이사금-내물 마립간-실성 마립간-눌지 마립간-자비 마립간-소지 마립간-지증왕-법흥왕-진흥왕-진지왕-진평왕-선덕여왕-진덕여왕-태종 무열왕-문무왕-신문왕-효소왕-성덕왕-효성왕-경덕왕-혜공왕-선덕왕-원성왕-소성왕-애장왕-헌덕왕-흥덕왕-희강왕-민애왕-신무왕-문성왕-헌안왕-경문왕-헌강왕-정강왕-진성여왕-효공왕-신덕왕-경명왕-경애왕-경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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