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 17대 인종(仁宗)
출생 1109년 11월 5일 ~ 1146년 4월 17일
재위 1122년 5월 22일 ~ 1146년 4월 17일(23년 11개월)
가족 부인 4명, 자녀 5남4녀.
생애
고려 17대 인종(仁宗)의 시호는 '공효대왕'(恭孝大王). 휘는 구(構), '해'(楷).
1122년 아버지 예종이 세상을 떠나자 14세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올랐고, 문벌 귀족의 세력이 극에 달했던 고려 중기의 격동기를 거쳐 간 왕이다.
평생 권력가들의 틈바구니에서 고군분투했으며, 사후 그의 성품이 어질고 효성스럽다 하여 '인종(仁宗)'이라는 묘호를 받았다.
1122년 5월 아버지 예종이 서거함에 따라 왕태자 왕해가 고려 제17대 국왕 인종으로 즉위함. 외할아버지 이자겸이 군국대권을 장악함.
1126년 3월 신흥 강국으로 떠오른 금나라가 고려에 사대(事大) 관계를 요구하자, 이자겸과 척준경 등이 조정을 주도하여 이를 수용함.
5월 인종의 측근 세력이 이자겸을 제거하려다 실패하자, 이자겸과 척준경이 군사를 일으켜 대궐을 불태우고 안공대왕을 구금하는 이자겸의 난이 발생함.
6월 인종이 척준경을 회유하여 외척 이자겸을 체포하고 영광으로 유배보내며 외척 전횡을 끝냄.
1127년 4월 인종이 정지상 등의 탄핵을 받아들여 척준경마저 가평으로 유배보내며 이자겸의 잔당 세력을 완전히 축출함.
1127년 이자겸의 난으로 개경 궁궐이 불타자 문벌 귀족 세력이 약화된 틈을 타, 승려 묘청과 정지상 등 서경(평양) 세력이 서경 천도와 칭제건원(황제를 칭하고 독자적 연호 사용)을 주장하기 시작함.
1135년 1월 개경 문벌 귀족들의 반대로 서경 천도가 무산되자, 묘청 세력이 서경에서 국호를 대위(大爲), 연호를 천개(天開)로 선언하며 묘청의 난을 일으킴.
1136년 2월 인종의 명을 받은 판삼사사 김부식이 이끄는 관군이 서경을 함락하고 약 1년간 이어진 묘청의 난을 최종 진압함.
1145년 인종이 변란으로 정국이 혼란해진 나라의 기강을 정립하고자 지시한 지 5년 만에, 김부식이 기전체 역사서인 《삼국사기》를 완성하여 바침.
1146년 4월 인종이 개경 정궁 보화전에서 향년 36세의 나이로 사망함에 따라 왕태자 왕현이 고려 제18대 국왕 의종으로 즉위함.
가족관계(인종 가계도)

● 연덕궁주 이씨(폐위)
본관은 인천 이씨로 조선국공(朝鮮國公) 이자겸의 셋째 딸이며, 인종의 셋째 친이모이다.
이자겸은 인종의 외할아버지였지만 다른 가문의 여자가 인종의 후비가 되면 자신의 권세가 흔들릴까 두려워 인종에게 자신의 딸 둘을 왕비로 삼도록 강요했다.
이에 1124년 8월 14일 조카인 인종과 혼인했으며, 1126년 2월 24일 연덕궁주(延德宮主)로 책봉되었다.
이자겸의 난이 진압된 후 간관들이 "궁주는 왕의 이모가 되는 까닭에 배필로 삼을 수 없다"고 간언했다.
이에 1126년 6월 20일 폐비되었으나 이후에도 인종은 후하게 대우하였다.
1139년 8월 4일 사망했다.
● 복창원주 이씨(폐위)
이자겸의 넷째 딸이며, 인종의 넷째 친이모이다.
언니인 연덕궁주에 이어 1125년 1월 18일 조카인 인종과 혼인하였다.
《고려사》 후비 열전에 따르면 이자겸이 반역을 꾀하여 떡에 독약을 넣어 왕에게 보내자 폐비가 몰래 왕에게 알렸고, 왕이 그 떡을 까마귀에게 던져 주었더니 까마귀가 먹고 죽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자겸은 또다시 폐비로 하여금 독약이 든 약사발을 왕에게 보냈는데, 폐비가 독약이 든 약사발을 들고 가다가 일부러 넘어지면서 쏟아버렸다.
이자겸의 난이 진압된 후 1126년 6월 20일에 폐비가 되었으나 이후에도 인종은 목숨을 구해준 은혜를 잊지 않고 토지와 저택, 노비를 하사하는 등 후하게 대우하였다.
인종 사후 의종과 명종도 극진하게 대우하였다.
1195년 11월 27일(음력)에 사망하자 명종은 왕후의 예로 장례를 치러주었다.
● 공예왕후 임씨
문하시중을 지낸 정안공(定安公)의 딸이다.
이자겸 세력이 축출된 후 1127년 정식으로 맞이한 왕비이다.
인종과의 사이에서 5남 4녀를 모두 출산하며 왕실의 기틀을 다졌다.
아들 3명이 모두 왕위에 오르면서 태후가 되었으며, 지혜롭고 결단력 있는 성품으로 무신정변기 왕실을 지켜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 왕현(王晛)(18대 의종)
· 대령후 왕경(王暻)
어머니 공예태후가 장남 의종보다 더 아끼고 총애했던 영리한 아들이다.
이 때문에 의종의 시기를 받았고, 무신정변 직후 무신들에 의해 유배되었다.
· 왕호(王晧)(19대 명종)
· 원경국사 충희
의종과 명종의 동복동생, 신종의 동복형이다.
출가한 왕자로 법명이 '충희'이다. 훗날 '원경국사'로 추존되었다.
· 왕탁(王晫)(20대 신종)
· 승경궁주
의종 2년인 1148년 11월 6일에 상공주(上公主)[2]에서 승경궁주(承慶宮主)로 책봉되었다.
공화후 왕영(恭化侯 王瑛)과 혼인하였다.
승경궁공주(承慶宮公主)라고도 불렸으며, 자식으로는 딸 왕영녀 왕씨와 아들 광릉공 왕면이 있다.
· 덕녕궁주
의종 2년인 1148년 11월 6일에 언니인 승경공주(承慶公主)와 같이 궁주(宮主)로 책봉되었다.
타고난 자태가 아름답고 단아했으며 담소를 잘했다고 한다.
의종이 매번 아침에 꽃이 피거나 저녁에 달이 뜨면 궁궐로 불러들여 밤낮으로 술을 마시고 노래하니 추잡한 소문이 궁궐 밖에까지 났다고 한다.
명종 22년인 1192년에 사망했다.
강양공 왕감과 혼인하였고, 슬하에 의종의 아들 효령태자의 부인인 효령태자비 왕씨를 두었다.
· 창락궁주
의종 5년인 1151년 4월에 창락궁주(昌樂宮主)로 책봉되었다.
이후 신안후 왕성과 혼인하여 슬하에 아들로 계성후 왕원과 영인후 왕진을 딸로 강종의 제2비인 원덕태후 류씨를 두었다.
· 영화궁주
의종 5년인 1151년 4월에 창락궁주(昌樂宮主)로 책봉되었다.
이후 6촌인 소성후 왕공과 혼인하여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다.
● 선평왕후 김씨
아버지는 산정도감 판관(刪定都監判官) 김선(金璿/金瑄)이다.
남편인 인종과는 1127년에 혼인하였으며, 공예왕후와는 1년 차이로 늦게 혼인하였다.
제2왕후였어도 인종의 정식 왕후였기에 인종 사후에도 상당한 대우를 받았다.
다만 인종의 후계자(의종, 명종, 신종)는 전부 공예왕후의 소생이었기에 존호가 태후가 아닌 태비(太妃)로 1단계 낮게 올려졌다.
사후 시호는 의종을 폐위시키고 즉위한 명종의 견제를 받아 인종 '恭'효대왕과 같은 '恭'자 돌림 시호를 받지 못하고 ‘선평(宣平)’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주요사건과 인물
● 금나라에 대한 사대관계 수용(1126년 3월)
내용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가 송나라를 압박하고 강성해지자 고려에 군신(君臣) 관계를 요구함.
윤관의 여진 정벌 이후 적대적이었던 관계에서 금나라의 군사적 위협이 최고조에 달함.
결과 조정의 실권자였던 이자겸과 척준경 등이 전쟁을 피하고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반대를 무릅쓰고 금나라의 사대 요구를 전격 수용함.
의의 고려가 창건 이래 유지해 온 독자적이고 자주적인 대외 외교 노선이 후퇴함.
문벌 귀족의 안일한 현실 안주와 정권 유지욕을 보여주는 사례이며, 향후 서경파가 '금국 정벌'을 명분으로 내세우는 직접적인 계기가 됨.
● 이자겸의 난(1126년 5월)
내용 왕실 최고 권력가 이자겸이 군사력을 쥔 척준경과 결탁, 왕위 독점을 위해 군사를 일으켜 궁궐을 방화하고 인종을 구금하며 조정을 장악함.
결과 인종이 척준경을 회유하여 이자겸을 체포 및 영광으로 유배 보냄. 이듬해 척준경마저 축출하며 외척 전횡 세력을 완전히 제거함.
의의 고려 중기 문벌 귀족 사회의 부패와 모순을 증명함. 국왕의 권위 실추 및 개경 궁궐 전소로 인해 향후 서경 천도 운동의 직접적인 빌미를 제공함.
● 관학 정비 및 향학 설립(1127년~1130년)
내용 이자겸의 난 이후 실추된 왕권을 회복하고 국가 기강을 유교적 이념으로 바로잡기 위해 개경의 국자감(국립대학)을 정비하고, 역사상 처음으로 전국의 지방 주·현에 향학(지방 국립학교)을 설립함.
결과 지방 관리를 파견하여 학문을 장려하고 유학 교육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킴. 서적 편찬과 유학자 양성을 통해 문치(文治)의 기반을 다짐.
의의 중앙 문벌 귀족 중심의 교육 기회를 지방 지식인층까지 확대하는 발판을 마련함.
혼란스러운 정세 속에서도 문화와 교육을 통해 국가의 질서를 재정립하려 한 인종의 대표적인 내치(內治) 업적으로 평가됨.
●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1135년 1월)
내용 승려 묘청과 정지상 등 서경 세력이 풍수지리설을 내세워 서경(평양) 천도, 칭제건원, 금나라 정벌을 주장함.
개경 문벌 귀족들의 반대로 좌절되자 서경에서 반란을 일으킴.
결과 인종의 명을 받은 김부식이 관군을 이끌고 출정, 약 1년간의 격전 끝에 서경을 함락하고 묘청 세력을 완전히 진압함.
의의 고려 지배층 내 북진 세력(서경)과 사대 세력(개경)의 정면충돌.
신채호에 의해 '조선 역사상 일천년래 제일대사건'으로 평가받으며, 자주적·진취적 개혁 정신이 꺾이고 보수적 사대주의가 심화되는 계기가 됨.
● 삼국사기 편찬(1145년)
내용 연이은 반란(이자겸·묘청의 난)으로 국가 기강이 무너지자, 인종의 명을 받은 문신 김부식이 유교적 합리주의 사관을 바탕으로 고구려·백제·신라의 역사를 기전체 형식으로 정리함.
결과 편찬 시작 5년 만인 1145년에 완성하여 인종에게 공식 바침. 왕실의 정통성을 재확립하고 국가 정국을 수습하는 데 기여함.
의의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역사서로서 독보적인 사료적 가치를 지님.
삼국 역사의 체계적 정리를 통해 민족 공동체 의식을 고취했으나, 신라 중심의 기술과 사대주의적 한계도 지님.
인종 재위당시 연표

고려 왕 계보
태조 - 혜종 - 정종 - 광종 - 경종 - 성종 - 목종 - 현종 - 덕종 - 정종 - 문종 - 순종 - 선종 - 헌종 - 숙종 - 예종 - 인종 - 의종 - 명종 - 신종 - 희종 - 강종 - 고종 - 원종 - 충렬왕 - 충선왕 - 충숙왕 - 충혜왕 - 충목왕 - 충정왕 - 공민왕 - 우왕 - 창왕 - 공양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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