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 16대 예종(睿宗)
출생 1079년 2월 17일 ~ 1122년 5월 22일
재위 1105년 11월 17일 ~ 1122년 5월 22일(16년 6개월)
가족 부인 4명, 자녀 1남2녀.
생애
고려 16대 예종(睿宗)의 시호는 문효대왕(文孝大王). 휘는 우(俁). 자는 세민(世民).
어린 조카인 헌종(제14대)을 퇴위시키고 스스로 보위에 오른 숙종(제15대)과 명의왕후의 장남이다.
북방 여진 정벌과 관학(국가 교육) 진흥을 이끈 고려 전기의 대표적인 명군이고, '허(虛)로 명(明)에 이르고 사(思)로 성(聖)을 만들었다'(虛以致其明 思以作其聖)란 뜻으로 '예' 자 묘호를 올렸다고 한다.
또한 문(文)으로는 문학 진흥에 힘썼고, 무(武)로는 170,000명의 대군을 출정, 북벌을 진행하여 고려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1105년 11월 숙종이 서거함에 따라 왕태자 왕우가 고려 제16대 국왕 예종으로 즉위.
1106년 4월 숙종 대부터 진행되던 남경(서울)의 신궁(궁궐) 건축 사업이 최종 완공되어 궁궐의 각 전각 이름을 지음.
1107년 1월 예종이 국왕으로서 처음으로 남경(서울) 순행을 단행하여 새로 조성된 궁궐에 거처하고 지세를 살핌.
12월 윤관을 원수, 오연총을 부원수로 삼아 17만 대군(별무반)의 제2차 여진 정벌 출정.
1108년 2월 정복한 여진족 영토에 함주·영주·웅주·길주·복주·공험진 등 동북 9성 축성 및 고려 영토 편입 완성.
1109년 4월 개경의 국자감에 전문 학과 인재 양성을 위한 7개의 전문 강좌인 국학 칠재(七齋) 개설.
7월 여진족의 필사적인 반격과 방어의 어려움, 조정의 논란 끝에 동북 9성을 여진에게 최종 반환하고 철수.
1110년 1월 예종이 남경(서울)을 다시 순행하여 관원들을 격려하고 지역 민심을 살핌.
1116년 7월 관학의 재정 지원을 담당할 고려 최초의 국가 장학재단인 양현고(養賢庫) 설립.
9월 북송(궁중)으로부터 아악의 시초가 되는 궁중 음악 ‘대성악(大晟樂)’과 악기를 들여와 수용.
1119년 10월 학문 연구와 국왕의 자문을 위해 궁궐 내에 청연각(淸燕閣)과 보문각(寶文閣)을 설치하고 학사들을 배치.
1120년 10월 팔관회에서 개국공신 신숭겸과 김락을 추모하며 예종이 직접 향가 ‘도이장가(悼二將歌)’를 지음.
1122년 5월 예종이 43세의 나이로 사망하고, 아들인 17대 인종이 즉위(외척 이자겸의 본격적인 집권 계기).
가족관계(예종 가계도)

● 경화왕후 이씨
1079년에 선종과 정신현비의 딸로 태어났으며, 성씨는 외가의 성을 따라 이씨(李氏)로 하였다.
남편인 예종과는 친사촌이 된다.
아버지 선종이 즉위전에 어머니 정신현비가 사망해 외가(外家)에서 자라나 연화공주(延和公主)로 책봉(冊封)되었다.
예종 1년인 1106년 6월 2일에 왕비로 맞아들였는데 용의(容儀)가 맑고도 고와 예종이 매우 총애하였다.
● 순덕왕후 이씨
예종은 경화왕후 사망 이후 같은 인천 이씨 가문의 순덕왕후를 왕비로 맞아들였다.
첫 시호는 '순덕왕후'이며, 아들인 인종이 즉위 이후, 예종의 시호인 '문효대왕'의 시호를 따라 '문경왕태후'로 시호를 고쳤다.
· 태자 왕해(王楷)(17대 인종)
· 승덕공주
인종 2년인 1124년 8월 28일에 장공주(長公主)에 책봉.
고려 왕실의 종친인 한남백(漢南伯) 왕기(王杞)와 혼인하여 슬하에 3남을 두었다.
· 흥경공주
인종 2년인 1124년에 궁주(宮主)에서 공주(公主)로 책봉.
고려 왕실의 종친인 안평공 왕경과 혼인하였다.
● 문정왕후 왕씨
문정왕후의 아버지인 진한공 왕유는 시아버지인 숙종의 이복 동생으로 문종과 인경현비의 아들이다.
또 남편 예종의 친조모는 이자연의 딸인 인예왕후이며, 문정왕후의 할머니 인경현비 역시 이자연의 딸로 이 둘은 서로 자매지간이다.
예종과 문정왕후의 혼인은 친가로는 4촌간, 외가로는 6촌간의 근친혼이다.
선왕인 숙종이 6촌 이상의 근친혼에 대해 금지령을 내렸지만 왕실이나 민간이나 여전히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 숙비(淑妃) 최씨
대경(大卿)을 지낸 최용과 그 부인 김씨의 8남 5녀 중 셋째 딸로, 본관은 해주이다.
최용은 고려 전기 《칠대실록》등을 편찬한 최충의 증손자이다.
처음에는 장신궁주(長信宮主)라고 하였으며, 1129년(인종 7년) 3월 12일(음력 2월 20일) 예종의 아들인 인종에 의해 숙비(淑妃)에 진봉되었다.
● 이외에도 여러 후궁과 자녀가 있었다고 하지만 고려사에는 기록이 없어서 제외함.
주요사건과 인물
● 윤관의 여진 정벌과 동북 9성 개척(1107년~1109년)
사건 여진족 정벌 및 북방 영토 개척
내용 예종은 부왕 숙종의 유지를 이어 신기군(기병) 중심의 특수부대인 별무반을 정비함.
1107년 윤관과 오연총에게 17만 대군을 주어 함경도 일대의 여진족을 소탕하게 함.
정복한 지역에 함주, 영주 등 동북 9성을 축성하여 고려 영토로 편입했으나, 여진족의 격렬한 반격과 수비의 어려움, 조정 내부의 반대로 인해 1년 7개월 만에 9성을 돌려주고 철수.
의의 고려 역사상 가장 공세적인 북방 개척 사업.
비록 9성은 환부했으나 고려의 군사력을 과시하여 국방을 안정시켰고, 이때 밀려난 여진족이 훗날 세력을 키워 ‘금(金)나라’를 건국하는 도화선이 됨.
● 관학(국립 교육) 진흥 정책 시행(1109년~1119년)
사건 국학 칠재 설치 및 양현고 설립
내용 당시 사립 최고 교육기관인 '최충의 문헌공도(사학 12도)'가 인기를 끌면서 국립 대학인 국자감이 철저히 외면받음.
이에 예종은 국자감을 국학으로 개편하고, 7개의 전문 강좌인 국학 칠재(七齋)를 개설.
여기에는 고려 역사상 최초로 무학(武學) 강좌인 강예재가 포함됨.
또한, 학생들을 지원하기 위한 국가 장학재단인 양현고(養賢庫)를 설립.
의의 침체되었던 유학 교육과 국립 교육기관을 국가가 주도하여 성공적으로 부활.
특히 무학 강좌의 개설은 문무 균형을 맞추려는 획기적인 시도였으며, 이때 육성된 관학 출신 인재들은 향후 문벌 귀족 체제를 견제하는 새로운 정치 세력으로 성장.
● 외척 경원(인주) 이씨 세력의 급부상(1108년 이후)
사건 이자겸의 정계 복귀와 외척 정치의 서막
내용 예종은 왕권을 안정시키기 위해 당대 최고 명문가였던 경원 이씨 가문의 이자겸의 딸(순덕왕후)을 왕비로 맞이함.
이 과정에서 한동안 정계에서 밀려나 있던 이자겸이 다시 중앙 정계의 핵심으로 복귀.
예종은 이자겸 세력을 활용해 기존 귀족들을 견제했으나, 이는 이자겸이 조정의 권력을 독점하는 결과를 낳음.
의의 왕권 강화를 위해 외척을 끌어들였으나, 결과적으로 왕권을 뒤흔드는 부메랑이 됨.
예종 사후 그의 아들인 인종 대에 이르러 ‘이자겸의 난(1126년)’이 일어나는 결정적인 배경이 되었으며, 고려 문벌 귀족 사회가 붕괴하기 시작하는 신호탄이 됨.
● 윤관 (尹瓘)
별무반을 이끌고 여진을 정벌한 최고의 군사 사령관..
비록 9성을 환부하며 일시적으로 실각하기도 했으나, 예종 대의 가장 상징적인 국방 업적을 이룩한 주역.
● 한안인 (韓安仁)
예종이 이자겸 등 기존 문벌 귀족을 견제하기 위해 중용한 측근 세력(과거 출신 신진 관료)의 영수.
예종의 두터운 신임을 받아 관학 진흥과 개혁 정책을 실무적으로 주도했으나, 예종 사후 이자겸에게 제거당함.
● 이자겸 (李資謙)
예종의 장인이자 다음 왕인 인종의 외할아버지.
예종의 비호 아래 가문의 권력을 다시 일으켰으며, 예종 말년기부터 왕실을 압도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쥐게 된 정치가.
예종 재위당시 연표

고려 왕 계보
태조 - 혜종 - 정종 - 광종 - 경종 - 성종 - 목종 - 현종 - 덕종 - 정종 - 문종 - 순종 - 선종 - 헌종 - 숙종 - 예종 - 인종 - 의종 - 명종 - 신종 - 희종 - 강종 - 고종 - 원종 - 충렬왕 - 충선왕 - 충숙왕 - 충혜왕 - 충목왕 - 충정왕 - 공민왕 - 우왕 - 창왕 - 공양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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