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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고려] 29대 충목왕(忠穆王)

by [悠悠自適] 2026. 6.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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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29대 충목왕(忠穆王)
출생 1337년 5월 23일 ~ 1349년 1월 2일
재위 1344년 3월 9일 ~ 1349년 1월 2일(4년 9개월)
가족 없음.

생애
고려 29대 충목왕(忠穆王)의 시호는 '충목현효대왕'(忠穆顯孝大王). 휘는 '흔'(昕). 

몽골식 휘는 '바스마도르지'(八思麻朶兒只). 
희대의 폭군이었던 제28대 충혜왕의 장남으로 모후는 몽골인이었던 덕녕공주이다.
아버지 충혜왕이 온갖 기행과 악행을 일삼다 원나라에 의해 폐위되어 유배를 가던 중 사망하자 원나라에 볼모로 가 있던 8세의 어린 나이로 고려 국왕에 즉위했다.
나이가 너무 어렸기 때문에 어머니인 덕녕공주가 수렴청정(섭정)을 하며 대신들과 함께 나랏일을 돌보았다.

1344년 3월 충목왕이 원나라 혜종(순제)으로부터 정식 고명을 받아 8세의 나이로 제29대 고려 국왕으로 즉위함.
4월 어머니인 덕녕공주가 수렴청정을 시작하며 선왕(충혜왕) 때 나라를 어지럽힌 측근들을 대거 유배 보내고 권문세족이 독점하던 토지를 환수하는 등 개혁을 단행함.
1345년 5월 원나라에 머물던 숙부 왕기(훗날의 공민왕)를 강릉부원대군으로 책봉하여 왕실의 지위를 안정시킴.

1347년 2월 원나라 황제의 지지와 명령에 따라 고려 말 최고의 폐정 개혁 기구인 정치도감(整治都監)을 설치하고 각 도에 관원을 파견하여 불법 토지와 노비 문제를 조사함.
3월 정치도감에서 친원파 권문세족이자 기황후의 친척인 기삼만을 불법 토지 약탈 죄로 체포했으나, 그가 감옥에서 사망하는 기삼만 옥사 사건이 발생함.
10월 기삼만의 죽음에 분노한 기황후와 원나라의 압박으로 인해 고려의 개혁을 주도하던 정치도감 관원 수십 명이 체포되어 곤장을 맞는 등 개혁 정치가 큰 좌절을 겪음.

1348년 5월 백성들의 굶주림을 구제하고 빈민을 돕기 위한 임시 구호 기구인 진제도감(賑濟都監)을 설치함.
6월 원나라 장인들의 기술적 영향을 받아 고려 불교 미술의 걸작인 개성 경천사지 십층석탑을 건립함.
1349년 1월 충목왕이 지병을 이기지 못하고 불과 12세의 어린 나이에 후사 없이 사망함.

가족관계(충목왕 가계도)


부인, 자녀없음

 

주요사건과 인물
● 정치도감(整治都監)의 설치와 개혁 착수(1347년 2월)
내용 충목왕과 덕녕공주가 원나라 조정의 공식적인 지지와 명령을 받아, 권문세족들이 강제로 빼앗은 토지와 노비를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고 국가 기강을 바로잡기 위한 최고 폐정 개혁 기구인 정치도감을 설치함.
결과 개혁 관원(정치관)들을 전국 각 도에 파견하여 부패한 세력들의 불법 재산을 압수하고 백성들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등 강력한 인적·물적 청산에 나섬.
의의 고려 말기 고질적인 사회 문제였던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독점)을 국가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바로잡으려 시도한 고려 후기 핵심 개혁 운동의 시발점이었음.

● 기삼만 옥사 사건 발생(1347년 3월)
내용 정치도감의 개혁 관원들이 당시 원나라에서 최고 권력을 쥐고 있던 기황후의 친척(친족)이자 부패 권문세족인 기삼만을 불법 토지 약탈 및 백성 착취 죄로 전격 체포하여 국문하던 중, 기삼만이 감옥에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함.
결과 기황후와 원나라 조정, 그리고 고려 내 친원파 세력들이 "원나라의 권위에 도전했다"라며 격분하였고, 고려 왕실을 향해 거센 정치적 보복을 예고함.
의의 왕권보다 강했던 친원파 귀족 세력과 국가 개혁 세력이 정면으로 충돌하여, 고려의 자주적 개혁이 외세의 벽에 부딪히는 결정적 계기가 된 사건임.

● 정치도감 개혁의 좌절과 사법 탄압(1347년 10월)
내용 기삼만 옥사에 분노한 원나라가 고려 조정에 압박을 가하여 개혁을 주도하던 정치도감 관원 서호구, 강윤충 등 수십 명을 강제로 체포하고 사법 처리하도록 명령함.
결과 개혁을 이끌던 핵심 관원들이 원나라 사신과 친원파에 의해 대낮에 끌려가 곤장을 맞고 파직되었으며, 정치도감은 이름만 남은 채 모든 개혁 기능이 사실상 마비됨.
의의 원나라의 간섭기라는 냉혹한 현실 속에서 국왕의 의지만으로는 권문세족과 기황후 가문의 거대한 기득권을 타파할 수 없다는 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비극적 좌절이었음.

● 진제도감(賑濟都監) 설치와 민생 구율(1348년 5월)
내용 정치적 개혁이 좌절된 상황에서 전국적인 가뭄과 기근이 겹치자, 충목왕과 섭정청은 백성들의 굶주림을 해결하고 흉년으로 유랑하는 빈민들을 구제하기 위해 임시 구호 기구인 진제도감을 설치함.
결과 왕실의 재정을 일부 풀고 부유한 자들의 곡식을 거두어 도성 안팎의 굶주린 백성들에게 죽을 먹이는 등 당면한 민생 위기를 수습함.
의의 정치 개혁은 실패했으나, 아버지가 망친 민생을 돌보고 국가의 기본적인 구휼 기능을 유지하려 노력한 어린 왕과 어머니의 애민 정신이 투영된 조치였음.

● 충목왕의 요절과 사망(1349년 1월)
내용 정치적 좌절과 지병이 겹치면서 몸이 급격히 쇠약해진 충목왕이 재위 4년여 만에 불과 12세의 어린 나이로 후사(자녀) 없이 세상을 떠남.
결과 충목왕이 자식 없이 서거하자, 왕위는 이복동생인 9세의 충정왕에게 승계되었고, 고려 조정은 다시 한번 왕위 계승을 둘러싼 극심한 혼란과 원나라의 간섭에 휩싸이게 됨.
의의 개혁의 싹을 틔우려 했던 소년 군주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인해 고려의 전면적인 자주 개혁은 훗날 그의 숙부인 공민왕이 즉위할 때까지 뒤로 미뤄지게 됨.

충목왕 재위당시 연표


고려 왕 계보
태조 - 혜종 - 정종 - 광종 - 경종 - 성종 - 목종 - 현종 - 덕종 - 정종 - 문종 - 순종 - 선종 - 헌종 - 숙종 - 예종 - 인종 - 의종 - 명종 - 신종 - 희종 - 강종 - 고종 - 원종 - 충렬왕 - 충선왕 - 충숙왕 - 충혜왕 - 충목왕 - 충정왕 - 공민왕 - 우왕 - 창왕 - 공양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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