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고구려] 1대 동명성왕(東明聖王)

badineri 2024. 10. 8.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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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1대 동명성왕(東明聖王-고주몽)

출생 B,C 58년 ~ B,C 19년(향년 39세)

재위 B,C 37년 ~ B,C 19년(18년)

가족 부인 2명, 자녀 3남

 

생애

고구려 시조인 주몽은 아버지 해모수와 어머니 유화부인사이에서 태어났다.

동부여 금와왕의 왕자들의 핍박을 피해 졸본으로 가서 도읍을 정하고 고구려를 세웠다.

이듬해 비류국 송양왕의 항복을 받았고 행인국·북옥저를 정복하여 나라의 기틀을 다졌다.

기원전 19년 동부여에서 첫 부인 예씨와 왕자 유리가 도망해오자 태자로 삼았다.

그 해 9월에 서거하여 용산에 장사 지내고 시호를 동명성왕이라 했다.

광진구 아차산의 고구려정

 

어릴때부터 활쏘기에 능했고, 주몽이란 이름도 부여말로 '활을 잘쏘는 사람'을 뜻한다.

졸본에는 이미 구려국이 있었는데 이를 복속하여 더 높은 구려국이라는 뜻으로 고구려를 세웠고, 이로 인하여 고(高)를 성씨로 삼았다.

왕위에 오른 지 4년째 되던 날에 궁실과 성을 수축했고 근처에 있던 비류국왕 송양을 굴복시킨 후, 비류국을 다물도로 삼았다.

이후 행인국과 북옥저를 병합한다.

기원전 19년 4월 부여에서 아들 유리가 도망쳐 오자 태자로 삼았고, 동명성왕 사후 유리가 왕이 되자 소서노와 그 두 아들 비류, 온조는 남하하여 백제를 건국하게 된다.

《삼국사기》에는 기원전 19년 9월, 40세 때 승하하여 용산(龍山)에 임금의 무덤을 만들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동국이상국집》에 실린 《구삼국사》의 〈동명왕〉 편과 『광개토대왕릉비』에선 왕은 홀본 동쪽에서 황룡을 타고 승천했다고 한다.

《삼국사기》 기록엔 아들 온조왕이 기원전 19년에, 손자 대무신왕이 서기 20년에 각자 동명왕을 기리는 사당을 세운다.

삼국사기 동명성왕 기록

 

가족관계(동명성왕 가계도)

· 왕후 예씨 부여출신으로 부여를 떠나기전에 결혼하고, 이후 아들 유리를 낳아 유리를 고구려로 보내지만, 본인은 부여에 남았다.

· 왕후 연씨 연타취발의 딸로 이름은 소서노.

주몽과의 결혼전에 이미 비류와 온조 두아들이 있었지만, 주몽과는 정략적으로 결혼했다.

이후 주몽의 후계자 다툼에서 유리에게 밀리자, 두아들을 데리고 남쪽으로 남하하여 백제를 건국하게 된다.

· 유리 왕후 예씨의 아들로 2대 유리명왕.

· 비류 왕후 연씨의 큰아들.

· 온조 왕후 연씨의 둘째아들로 백제 1대왕.

 

동명성왕 재위당시 삼국시대 연표

고구려 건국 20년전에 이미 신라가 건국되었고, 고구려 건국 19년후에 백제가 건국되었다.

그러나 당시 삼국의 국가 규모를 보면, 백제와 신라는 고구려에 비해 미미했기에 큰 의미는 없다.

 

고구려 왕 계보

동명성왕-유리명왕-대무신왕-민중왕-모본왕-태조왕-차대왕-신대왕-고국천왕-산상왕-동천왕-중천왕-서천왕-봉상왕-미천왕-고국원왕-소수림왕-고국양왕-광개토대왕-장수왕-문자명왕-안장왕-안원왕-양원왕-평원왕-영양왕-영류왕-보장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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