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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백제] 4대 개루왕(蓋婁王)

by [悠悠自適] 2024. 1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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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4대 개루왕(蓋婁王)
출생 ? ~ 166년
재위 128년 11월 ~ 166년(약 38년)
가족 부인 2명, 자녀 2남

생애
개루왕은 기루왕의 아들이며, 128년 11월 기루왕이 사망하자 백제 4대 왕에 올랐다.
개루왕은 적자 소생이 아닌 서자일 가능성이 높다.
기루왕 21년에 '한강에 두 마리 용이 나타났다'는 기록과 기루왕 27년에 '왕이 한산에서 신록을 잡았다'는 기록이 있다.
즉, 기루왕의 적자가 왕위 찬탈로 정권을 잡았으나 6년뒤에 실패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이는 신라 외교관계에서도 그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156년(개루왕 28년) 1월, 신라 아찬 길선이 반역을 도모하다 발각되어 백제로 도주했고, 신라는 소환을 요구했다.
개루왕은 신라의 요구에 응하지 않았고, 이에 신라 아달라 이사금은 군사를 동원해 백제를 공격했다.
백제는 방어에 성공했고, 신라군은 퇴각했지만 양국 관계는 냉각되었다.

백제는 기루왕 29년(105년)에 신라와 화친을 맺은뒤 평화를 유지해왔다.
기루왕 재위시까지는 서로 사신을 보내고, 군대를 보내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개루왕 즉위한 이후에는 양국이 사신을 주고 받은 기록도 없고, 신라의 아찬 길선 소환요구까지 거부했다.
이는 신라가 개루왕의 즉위를 지지하지 않은것으로 보이고, 개루왕도 신라의 요구에 거부한것으로 보인다.

개루왕은 38년동안 재위했지만, 치세에 대한 기록은 거의없다.
'개루왕은 성격이 공손하고 품행이 방정했다'는 기록과 사냥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132년(개루왕 5년) 북한산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고, 155년 일식이 나타났다는 기록이 있다.
개루왕은 이렇게 38년을 재위하다가 166년에 생을 마감하였다.
능에 대한 기록은 없으며, 묘호는 개루왕(蓋婁王)이라고 하였다.

 

주요사건
· 신라 아찬 길선의 도주
신라는 초기에 박, 석, 김씨가 바뀌면서 왕위를 이었다.
개루왕 재위당시에는 신라는 박씨의 아달라왕이었는데, 이후 석씨의 벌휴왕이 재위하였다.
155년(개루왕 27년, 아달라왕 11년) 2월, '신라 도성에 용이 나타났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는 반란의 표현인데 10월 아찬 길선이 반역을 도모했다.
하지만 역모는 실패했고, 길선은 백제로 도주하였다.
신라 아달라왕은 길선의 소환을 요구했지만, 백제 개루왕은 이를 거부하였다.
이에 신라가 군사를 동원해 백제를 공격하였으나 백제의 방어에 신라는 별다른 성과없이 퇴각하였다.

가족관계(개루왕 가계도)

· 왕후, 후비
이들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 초고왕
개루왕의 장남. 이름은 남아있지 않고, 5대 초고왕편 참고.

· 고이왕(?)
개루왕의 차남이자 초고왕의 동복아우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정황상 신빙성은 떨어진다. 8대 고이왕편 참고.

개루왕 재위당시 삼국시대 연표

개루왕은 재위 38년동안 별다른 기록은 없고, 고구려와 신라와도 큰 충돌은 없었다.
동시대에 신라는 지마왕, 일성왕, 아달라왕이 재위하였고, 고구려는 태조왕, 차대왕, 신대왕이 재위하였다.

백제 왕 계보
온조왕-다루왕-기루왕-개루왕-초고왕-구수왕-사반왕-고이왕-책계왕-분서왕-비류왕-계왕-근초고왕-근구수왕-침류왕-진사왕-아신왕-전지왕-구이신왕-비유왕-개로왕-문주왕-삼근왕-동성왕-무령왕-성왕-위덕왕-혜왕-법왕-무왕-의자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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