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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백제] 20대 비유왕(毗有王)

by [悠悠自適] 2025. 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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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20대 비유왕(毗有王)
출생 ? ~ 455년 9월
재위 427년 12월 ~ 455년 9월(27년 9개월)
가족 부인 1명, 자녀 3남

생애
비유왕은 구이신왕의 장남 또는 이복동생(전지왕의 서자)으로 어느것인지 알 수 없다고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정황상 구이신왕의 아들보다는 이복 동생일 가능성이 높다.
구이신왕이 23세에 사망한것을 감안하면, 아들의 나이가 어렸을텐데 국정운영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비유왕은 용모가 아름답고 말을 잘하여 사람들이 추앙하고 존중했다.

428년(재위 2년) 2월, 비유왕은 4부를 순행하며 가난한 백성들에게 곡식을 나누어 주었다.
429년 가을, 송나라에 조공하였고, 10월에 상좌평 여신이 사망하자 해수를 상좌평으로 임명하였다.
430년 송나라 문황제가 사신을 보내 비유왕의 작호를 책봉해 주었다.
433년 7월에는 신라에 사신을 보내 화친을 청했고, 이듬해 434년에는 말 2필과 매를 보냈으며, 신라는 답례로 금과 명주를 보내왔다.

447년(재위 21년) 5월, 궁 남쪽에서 화재가 있었고, 7월에는 가뭄으로 기근이 들어 신라로 넘어가는 백성들이 많았다.
454년 8월에도 곤충때문에 흉년이 들어 기근에 시달렸다.
455년 9월, 흑룡이 한강에서 나타났고, 구름과 안개가 끼면서 어두컴컴해지자 날아갔다. 그리고 비유왕은 생을 마감했다.

삼국사기 비유왕 기록

 

주요사건
· 주변국과의 화친과 비유왕의 의문의 사망
비유왕은 송나라에 사신도 보내고 책봉도 받고, 신라에도 사신과 물품을 서로 주고받으며 화친관계를 유지하였다.
하지만 왜나라와는 적당히 거리를 두었다.
이는 선대왕인 구이신왕, 팔수부인, 목만치와도 관계가 있었다.
또, 왜나라는 신라를 침략하여 민가를 약탈했는데, 444년에는 신라 수도인 금성까지 포위할 정도로 대규모 침략이었다.
하지만, 왜나라를 식량 부족으로 퇴각했다. 이는 백제가 왜나라를 지원하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450년 7월에는 고구려 남쪽의 장수가 사냥하는것을 신라 하슬라의 성주가 습격하여 고구려 장수를 죽이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에 고구려 장수왕은 신라 서쪽을 공격하였고, 신라 눌지왕은 사과하며 사태를 수습하였다.
454년에 고구려가 다시 신라 북쪽을 공격하였고, 455년에는 백제를 공격하였다.
그리고 비유왕은 사망하게 되는데, 반정 세력에 의해 사망한건지 고구려의 침략때문에 사망한건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하지만, 다음 왕인 개로왕 기록에는 선왕(비유왕)의 유골이 들판에 가매장되었고, 개로왕 21년이 되어서야 비유왕의 능이 조성되었다.
이는 비유왕의 죽음이 정상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가족관계(비유왕 가계도)

· 왕후
왕후에 대한 기록은 없다.

· 개로왕
비유왕의 장남. 21대 개로왕편 참고.

· 문주왕
삼국사기에는 문주왕이 개로왕의 아들이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일본서기에는 문주와 곤지는 개로왕의 동생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삼국사기 문주왕 기록을 보면, 비유왕이 사망했을때 개로가 왕위를 이었고, 문주는 그를 도와 상좌평 직위에 올랐다고 되어있다.
문주왕이 개로왕의 아들이라면 태자였을텐데, 태자는 상좌평등 관직에 오를수 없고, 나이를 감안하더라도 상좌평에 오른다는것을 신빙성이 떨어진다.
22대 문주왕편 참고.

· 곤지
비유왕의 셋째아들.
일본서기에 곤지의 기록이 남아있는데, 개로왕은 고구려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왜나라에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곤지를 왜나라에 보냈다.
곤지는 개로왕에게 왕후를 함께 동행해달라고 요구했다.
이는 곤지가 개로왕이 자신을 견제세력인지 동맹세력인지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당시 개로왕의 왕후는 임신중이었는데, 개로왕은 곤지의 요구를 들어주면서 만약 도중에 왕후가 출산을 하게되면 다시 돌려보내라고 하였다.
이후 곤지와 왕후일행은 왜나라도 이동중에 왕후가 아들을 출산했고, 이 아들은 후에 25대 무령왕이 된다.
곤지는 혼자 왜나라에 도착했고, 개로왕이 사망하고 문주왕이 즉위하자 백제로 돌아와 내신좌평에 임명된다.
하지만 477년 7월, 병관좌평 해구에 의해 살해되고 만다.

비유왕 재위당시 삼국시대 연표

비유왕은 전쟁보다는 화친으로 정세를 이끌었고, 가난한 백성들에게 곡식을 나누어주었지만, 자연재해와 곤충으로 인한 피해는 극복하지 못했다.
또한, 말년에는 반정세력인지 고구려 세력인지 정확하지 않은 가운데 의문의 죽음을 맞이했다.
동시대에 신라는 눌지왕, 고구려는 장수왕이 재위하였다.

백제 왕 계보
온조왕-다루왕-기루왕-개루왕-초고왕-구수왕-사반왕-고이왕-책계왕-분서왕-비류왕-계왕-근초고왕-근구수왕-침류왕-진사왕-아신왕-전지왕-구이신왕-비유왕-개로왕-문주왕-삼근왕-동성왕-무령왕-성왕-위덕왕-혜왕-법왕-무왕-의자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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