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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신라] 8대 아달라 이사금(阿達羅 尼師今)

by [悠悠自適] 2025. 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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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8대 아달라 이사금(阿達羅 尼師今)
출생 ? ~ 184년 3월
재위 154년 2월 ~ 184년 3월(30년 1개월)
가족 부인 1명, 자녀없음

생애
아달라 이사금은 일성 이사금과 지소례왕의 딸인 박씨의 장남이다.
7척의 키에 넉넉한 콧마루로 기이한 외모를 가졌다.
154년 2월, 일성 이사금이 사망하자 신라 8대 왕에 올랐다.

154년(재위 원년) 3월, 계원을 이찬으로 삼고, 군국정사를 맡겼다.
155년 1월, 시조 사당에 제사를 지내고 대사면령을 내렸으며, 흥선을 일길찬으로 삼았다.
156년 4월, 서리가 내렸고, 계립령(경북 풍기에서 충북 단양까지 이르는 지역)의 길을 개척했다.
157년 2월, 감물, 마산의 두 현을 설치했고, 3월에는 장령진을 순행하고 변방지역 병사들의 노고를 치하하며 전투복을 하사했다.

158년(재위 5년) 3월, 죽령을 개척하고, 왜인들이 예물을 가지고 왔다.
160년 4월, 폭우로 알천지역의 물이 넘쳐 민가가 떠내려가고, 금성 북문이 저절로 무너졌다.
161년 7월, 황충이 일어 곡식을 해쳤고, 많은 수의 바다 물고기가 물밖에서 죽었다.
162년, 사도성을 순행하고 변방의 병사들을 치하했다.
164년 2월, 도읍에 용이 나타났다.

165년(재위 12년) 10월, 아찬 길선이 반란을 도모하다 발각되었고, 주살될 것이 두려워 백제로 도망갔다.
왕이 서신을 보내 돌려보낼것을 요구했으나, 백제 개루왕은 거절하였다.
이에 분노하여 군대를 출병시켜 백제를 정벌하려 하였으나, 백제가 수성전을 펼치고 식량이 떨어져 귀환했다.
167년 7월, 백제가 서쪽의 두 성을 습격해 격파하고는 백성 1천을 사로잡아 돌아갔다.
8월, 일길찬 흥선에게 2만 군사를 주고 백제를 토벌하게 했고, 아달라왕도 기마 8천을 통솔해 한수 앞까지 접근하니 백제가 두려워하며 백성들을 돌려주며 화친을 청했다.

168년(재위 15년) 4월, 이찬 계원이 죽자 흥선을 이찬으로 삼았다.
170년 2월, 시조 사당을 중수했고, 7월에는 도읍에 지진, 우박이 내려 곡식을 해쳤으며, 10월에는 백제가 국경지역을 노략질했다.
171년 봄, 곡식이 귀해지고, 백성들이 기근에 시달렸다.
172년 1월, 구도를 파진찬으로, 구수혜를 일길찬으로 각각 임명했다.
2월에는 시조 사당에 사변이 일어났고, 도읍에 전염병이 크게 돌았다.

173년(재위 20년) 5월, 왜국의 여왕 비미호가 사신을 보내 예물을 가지고 내방했다.
174년 1월, 흙비가 왔고, 2월에는 가뭄으로 우물물이 말랐다.
184년 3월, 아달라 이사금이 생을 마감했다.

 

가족관계(아달라 이사금 가계도)

· 왕비 내례부인(內禮夫人) 박씨
6대 지마 이사금의 딸.
남편인 8대 아달라 이사금이 사망하고, 9대 벌휴 이사금의 둘째 아들인 이매와 불륜관계로 10대 왕이 되는 내해 이사금을 낳는다.
아달라 이사금의 말년에 왕권이 약해지자, 불륜 관계인 이매와 벌휴 세력과 손을 잡고 반역을 했을 가능성이 있을수도 있고, 아니면 동명이인 일수도 있다.
9대 벌휴 이사금의 모친은 성이 김씨로 지진내례부인(只珍內禮夫人)으로, 내례부인(內禮夫人) 박씨와 명칭이 같다.
삼국사기에 내례부인(內禮夫人) 박씨와 벌휴 이사금의 둘째 아들인 이매가 불륜사이라는 기록은 없다.

주요사건
· 연오랑과 세오녀 설화
삼국사기에는 없지만 삼국유사에 연오랑과 세오녀 설화가 기록되어 있다.
157년(아달라 이사금 재위 4년), 연오랑, 세오녀 부부가 동해안에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연오가 해초를 따다가 바위가 움직이더니 그를 실은 채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갔고, 일본인들은 비범한 사람이라며 왕으로 삼았다.

세오는 남편이 돌아오지 않는 것을 이상히 여기다 남편이 벗어놓은 신발을 보고 바위 위에 올랐다. 
그러자 그 바위는 또다시 움직여 세오를 일본으로 데려갔고 세오는 연오와 재회해 왕비가 되었다.
한편, 그 때 신라에서는 해와 달이 빛을 잃었다. 

신라 아달라왕이 점술가를 불러 까닭을 점치게 하자 점술가는 우리나라의 해와 달의 정기를 품은 이들이 일본으로 갔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이에 신라 왕이 사람을 보내어 연오와 세오에게 돌아오도록 촉구했으나 두 사람은 돌아올 수 없다 하고 대신 세오가 직접 짠 비단을 보내었다. 
왕이 그 비단으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자 비로소 해와 달이 빛을 되찾았다. 
그 비단을 국보로 보관한 창고를 귀비고(貴妃庫), 비단으로 제사를 지내던 곳은 훗날 도기야(都祈野) 혹은 영일현(迎日縣)이라 불렸다.


아달라 이사금 재위당시 삼국시대 연표

아달라 이사금은 백제와의 관계에는 밀리지 않았으나, 내란과 자연재해는 피해가지 못했다.
동시대에 고구려는 차대왕, 신대왕, 고국천왕이 재위하였고, 백제는 개루왕, 초고왕이 재위하였다.

신라 왕 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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