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 26대 충선왕(忠宣王)
출생 1275년 10월 27일 ~ 1325년 7월 1일
재위 1298년 3월 9일 ~ 1298년 10월 1일, 1308년 9월 21일 ~ 1313년 4월 27일(복위)(5년 2개월)
가족 부인 7명, 자녀 3남.
생애
고려 25대 충렬왕(忠烈王)의 시호는 '충선선효대왕'(忠宣宣孝大王), 왕위에 오르기 전 이름은 '원'(謜)이었으며, 군주가 된 후에 '장'(璋)으로 고쳤다.
제25대 충렬왕과 제국대장공주 보르지긴 쿠틀룩켈미쉬의 장남이었으며, 원나라 세조 쿠빌라이 칸의 외손자이자 태조 칭기즈 칸의 4대손이었다.
원나라의 수도 대도(베이징)에 상주하며 고려를 통치했던 독특한 이력의 군주이다.
뛰어난 학문적 식견과 정치적 야망을 가졌으나, 급진적인 개혁의 실패와 복잡한 가계도로 인해 평생을 파란만장하게 살았다.
제1기 재위 기간(1298년 3월 9일 ~ 1298년 10월 1일)
1298년 3월 어머니의 죽음 이후 권력 위협을 느낀 세자 왕장(충선왕)이 아버지 충렬왕을 압박하여 왕위를 넘겨받고 고려 제26대 국왕으로 즉위함.
4월 기존의 부패한 정치를 개혁하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정방을 폐지하고, 국왕 직속의 혁신 기구인 '사림원(詞林院)'을 전격 설치함.
5월 충렬왕 시절 참월하다는 이유로 격하되었던 고려의 국가 관제를 대대적으로 개편하고 독자적인 인사 행정을 추진함.
7월 충선왕의 총애를 받던 조비(趙妃)를 시기한 정비 계국대장공주(원나라 공주)가 원나라 황실에 충선왕과 조비를 무고하는 서신을 보냄 (조비 무고 사건).
10월 사림원 개혁에 반발한 권문세족의 반발과 조비 무고 사건으로 분노한 원나라 황실의 압박으로 인해, 충선왕은 즉위 7개월 만에 폐위되어 원나라 대도로 압송되고 충렬왕이 다시 복위함.
제2기 복위 재위 기간(1308년 9월 21일 ~ 1313년 4월 27일)
1308년 9월 아버지 충렬왕이 세상을 떠나자, 원나라의 막강한 지지를 받던 충선왕이 복위 교서를 선포하며 고려 제26대 국왕으로 정식 복위함.
10월 국왕의 전제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기존의 최고 집행 기구였던 도평의사사(도당)의 권한을 축소하고, 왕명 출납을 담당하는 밀직사(密直司) 중심의 개혁을 단행함.
11월 국가 재정을 좀먹던 사원(절)의 상업 활동과 고리대금을 금지하고,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을 규제하는 등 민생 안정을 위한 정치를 시행함.
1309년 1월 소금의 전매제(국가가 소금 판매를 독점하는 제도)인 '각염법(榷鹽法)'을 제정하여 국가 재정을 크게 확충하고 권문세족의 소금 밀매를 차단함.
4월 고려 왕실과 혼인할 수 있는 가문을 공식 지정한 '재상지종(宰相之宗)'을 발표함. 이를 통해 문벌 귀족 세력을 통제하고 왕실의 혼인 정통성을 확립함.
1310년 1월 충선왕이 고려 조정을 측근들에게 맡겨둔 채 원나라 수도 대도(베이징)로 건너가 머물기 시작함. 이때부터 서신으로 명령을 내리는 이른바 '원격 정치'가 본격화됨.
5월 원나라 무종 황제로부터 만주 지역의 지배권과 고려 유민 통치권을 상징하는 '심양왕(瀋陽王)'의 고신(관직 임명장)을 정식으로 수여받음.
10월 충선왕이 고려에 귀국하지 않고 원나라에 장기 체류하자, 고려 조정에서 왕의 귀국을 독촉하는 상소(귀국 운동)가 빗발쳤으나 충선왕은 이를 거부함.
1313년 4월 원나라의 정치적 압박과 고려 내 반발이 거세지자, 충선왕은 전격적으로 차남인 강릉대군(충숙왕)에게 고려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上王)으로 물러남.
1320년 상왕이 된 지 7년이 지난 1320년, 원나라 황실의 정쟁에 휘말려 토번(티베트) 살사결(사스) 지역으로 유배를 떠나게 되었다
1325년 7월 유배에서 풀려난 지 약 2년 뒤 원나라 대도에서 소일하다가 생을 마감했다.
가족관계(충선왕 가계도)

● 계국대장공주(薊國大長公主)
원나라 세조 쿠빌라이 칸의 증손녀이자, 진왕(晉王) 감말라의 딸.
충선왕이 세자 시절 원나라 대도에서 정략결혼한 제1비(정비)이다.
하지만 충선왕은 공주를 멀리하고 고려 출신의 '조비'를 총애했다.
이에 분노한 공주는 원나라 황실에 "조비와 그 일가가 나를 저주하고 왕의 사랑을 독차지한다"며 밀고했다.
이 '조비 무고 사건'으로 인해 조비 일가는 감옥에 갇혔고, 충선왕 역시 즉위 7개월 만에 왕위에서 쫓겨나 원나라로 압송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 의비 예쉬진(야속진, 也速眞)
몽골 출신의 여성.
계국대장공주에게 외면받던 충선왕이 실질적으로 가장 사랑하고 의지했던 부인.
충선왕의 자녀 중 역사에 족적을 남긴 아들들을 모두 그녀가 낳았기 때문에, 이후 고려의 국왕들은 모두 의비 예쉬진의 혈통으로 이어지게 된다.
1316년 원나라에서 사망한 후 고려로 운구되어 장례가 치러졌다.
· 광릉군 왕감(王鑑)
아버지가 원나라에 머무는 동안 고려에 남아 정치를 돌보며 세자로 책봉되었다.
충선왕이 고려에 돌아오지 않고 원나라에서 '원격 정치'를 펼치자, 고려 조정의 일부 세력이 세자였던 왕감을 새 왕으로 옹립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이를 왕위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인 아버지 충선왕에 의해 1310년 원나라 대도(베이징)에서 동생(훗날 충숙왕)이 보는 앞수레에서 처형당했다.
· 왕도(王燾)(27대 충숙왕)
● 숙창원비(淑昌院妃) 김씨
고려의 문신 김양감의 딸.
고려 역사상 가장 파격적이고 스캔들이 가득한 인물이다.
원래 충선왕의 아버지인 충렬왕의 후궁(숙창원비)이었다.
충렬왕이 사망하자, 충선왕은 상복을 벗지도 않은 상태에서 서모(어머니뻘)였던 그녀와 간통하고 자신의 후궁으로 삼았다.
원나라 황실의 부마인 충선왕의 권세를 배경으로, 당시 왕비였던 계국대장공주와 대등하게 궁중 연회에 참석할 정도로 강력한 치마바람을 일으켰다.
● 조비(趙妃)
무신정권의 마지막 집권자였던 최의(崔竩)의 여종(시비) 출신.
충렬왕이 왕태손(세자 이전)이던 젊은 시절, 권신 김준이 최의를 멸한 후 그녀를 충렬왕에게 바쳤다.
신분이 너무 낮아 정식 후궁 봉작은 받지 못했다.
하지만 훗날 시집온 원나라의 제국대장공주도 반주를 특별히 아껴 궁중에 자주 들르게 했고, 그녀가 낳은 왕서를 '왕소군'이라 부르며 대우해 주었다.
● 순화원비(順和院妃) 홍씨
고려의 대표적인 권문세족인 남양 홍씨 홍규의 딸.
충선왕이 고려 문벌 세력을 포섭하기 위해 맞이한 부인이다.
그녀의 여동생은 훗날 충숙왕의 비가 되어 공민왕을 낳는 공원왕후(명덕태후)이다.
즉, 순화원비는 동생과 함께 고려 왕실의 대를 잇는 핵심 가문의 일원이었다.
● 정비(靜妃) 왕씨
고려 태조의 후손인 서흥후 왕전의 딸로, 충선왕에겐 먼 친척 뻘
왕실 내부의 혈통을 보존하고 정통성을 강화하기 위해 맞이한 종실 출신의 부인이다.
원나라 세력과 권문세족의 틈바구니에서 크게 정치적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했다.
● 궁인(宮人)
《고려사》 <이능간 열전>에 따르면 충선왕이 가까이 하던 여인으로, 백문거에게 하사했다고 한다.
· 덕흥군 왕혜(王譓)
충선왕의 셋째 아들로, 외세를 끌어들여 조국을 침략한 고려 말의 대표적인 반역자.
신분이 낮은 궁인의 아들로 태어나 승려로 지냈다가 권력에서 밀려나자 원나라로 망명했다.
공민왕의 반원 정책에 분노한 기황후와 손을 잡았다.
1364년 원나라 황실에 의해 고려 왕으로 책봉된 후, 원나라 군사 1만 명을 이끌고 고려를 침략했다.
고려의 명장 최영과 이성계에게 대패하여 실패했다.
원나라에서도 버림받아 유배를 갔고, 그곳에서 사망했다.
주요사건과 인물
● 사림원 설치 및 관제 개혁(1298년 4월)
내용 충선왕이 즉위 직후 부패한 권문세족을 견제하고 국왕 중심의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왕 직속 기구인 사림원을 설치함.
결과 신진 관료들을 대거 등용하고 충렬왕 때 격하되었던 고려의 독자적 관제를 일시적으로 복구하는 대대적인 인사 개정을 단행함.
의의 원나라의 간섭과 문벌 귀족의 세력을 약화시키고 왕권을 강화하려 했던 고려 말 개혁 정치의 효시가 됨.
● 조비 무고 사건(1298년 7월)
내용 충선왕이 정비인 원나라 계국대장공주를 멀리하고 고려인 조비(趙妃)를 총애하자, 질투한 공주가 조비 일가가 자신을 저주한다고 원나라 황실에 밀고함.
결과 원나라 사신이 내려와 조비와 그 아버지 조인규를 체포 및 고문하고 가문 전체를 원나라로 압송하여 유배 보냄.
의의 원나라 공주의 지위가 고려 국왕의 권력보다 우위에 있었음을 보여주며, 충선왕이 즉위 7개월 만에 폐위되는 결정적 계기가 됨.
● 각염법 시행(1309년 1월)
내용 충선왕이 복위한 후, 권문세족과 사원이 독점하여 막대한 이득을 취하던 소금의 사적인 제조와 판매를 금지하고 국가가 독점하는 소금 전매제를 시행함.
결과 의염창을 설치하여 소금 유통을 관리하고 이를 통해 국가 재정을 비약적으로 확충함.
의의 부패한 세족의 경제적 기반을 약화시키고 파탄에 이른 국가 재정과 민생을 안정시키는 경제 개혁의 성과를 거둠.
● 재상지종 발표(1309년 4월)
내용 충선왕이 고려 왕실과 합법적으로 혼인할 수 있는 최고의 명문 귀족 가문 15개를 공식적으로 지정함.
결과 왕실의 정통성을 보호하면서도, 개혁의 대상이었던 권문세족 세력의 가문 서열을 명확히 정리하여 정치적 타협을 이룸.
의의 고려 후기 지배층인 권문세족의 신분적 특권을 공식적으로 승인하고 서열화하는 기준이 됨.
충선왕 재위당시 연표

고려 왕 계보
태조 - 혜종 - 정종 - 광종 - 경종 - 성종 - 목종 - 현종 - 덕종 - 정종 - 문종 - 순종 - 선종 - 헌종 - 숙종 - 예종 - 인종 - 의종 - 명종 - 신종 - 희종 - 강종 - 고종 - 원종 - 충렬왕 - 충선왕 - 충숙왕 - 충혜왕 - 충목왕 - 충정왕 - 공민왕 - 우왕 - 창왕 - 공양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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