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 27대 충숙왕(忠肅王)
출생 1294년 8월 6일 ~ 1339년 5월 11일
재위 1313년 4월 28일 ~ 1330년 2월 26일, 1332년 3월 29일 ~ 1339년 5월 11일(복위)(23년 11개월)
가족 부인 5명, 자녀 3남.
생애
고려 27대 충숙왕(忠肅王)의 시호는 '충숙의효대왕'(忠肅懿孝大王). 원래 이름은 '도'(燾)였으나 군주로 즉위한 후에 '만'(卍)으로 개명했다.
자는 '의효'(宜孝), 몽골식 휘는 '아라트나시리'(阿剌忒訥失里)였다.
26대 충선왕과 의비 예속진의 아들이고, 친형인 세자 왕감이 왕위 계승 문제로 인해 1310년 부왕인 충선왕에게 살해당한 뒤에 정식으로 후계자가 되었다.
제1기 재위 기간(1313년 4월 28일 ~ 1330년 2월 26일)
1313년 4월 부왕인 충선왕이 왕위를 물려주고 원나라 대도로 떠나면서, 강릉대군 왕만(충숙왕)이 고려 제27대 국왕으로 즉위함.
1316년 11월 원나라의 압박으로 원나라 황족 출신인 복국장공주와 정략결혼을 맺고 고려의 제1정비로 책봉함.
1318년 6월 부원배와 권문세족들이 불법으로 빼앗은 토지와 노비를 본래 주인에게 돌려주기 위해 개혁 기구인 '찰리변위도감(拶理辨違都監)'을 설치해 민생 안정을 도모함.
1319년 10월 제1정비 복국장공주가 의문의 급사를 하자, 정적들이 "왕이 공주를 때려죽였다"고 무고하여 원나라에 고발당함.
1321년 2월 충숙왕의 든든한 배경이던 부왕 충선왕이 원나라의 정쟁에 휘말려 토번(티베트)으로 유배당하자, 왕권이 급격히 추락함.
7월 사촌 형제인 심왕 왕고 일파의 참소와 옹립 음모로 인해 충숙왕이 원나라 대도로 소환당하고, 국왕 인장(옥새)을 빼앗긴 채 5년간 억류(유폐) 생활을 시작함.
1324년 9월 유폐 생활 중 원나라의 정국 변동(태정제 즉위)으로 옥새를 돌려받고 지위가 회복되면서, 두 번째 몽골 공주인 조국장공주와 재혼함.
1325년 9월 귀국 도중 조국장공주가 한양 용산 행궁에서 차남(용산원자)을 출산했으나, 한 달 만에 공주가 17세의 나이로 요절하는 비극을 겪음.
1330년 2월 심왕 세력과의 끊임없는 권력 다툼과 정치적 압박에 환멸을 느낀 충숙왕이 세자(장남 충혜왕)에게 왕위를 넘겨주고 상황(태상왕)으로 물러남.
제2기 재위 기간(1332년 3월 29일 ~ 1339년 5월 11일)
1332년 3월 왕위를 이어받았던 충혜왕이 극심한 폭정과 향락을 일삼자, 원나라 황실이 충혜왕을 폐위시키고 충숙왕을 고려 국왕으로 다시 복위(2차 재위)시킴.
5월 원나라의 주선으로 세 번째 몽골 공주인 경화공주를 맞아들여 제3정비로 책봉함.
1335년 4월 총애하던 고려인 후궁 권씨를 '수비(壽妃)'로 책봉했으나, 이를 질투한 경화공주가 수비 권씨의 머리카락을 자르려 시도하는 등 격렬한 왕실 내궁 갈등이 일어남.
1339년 5월 장기간 지속된 심왕 세력과의 정권 다툼과 유폐 생활의 여파로 지병이 악화되어, 복위 7년 만에 내전(침전)에서 향년 46세의 나이로 사망함.
가족관계(충숙왕 가계도)

● 복국장공주(濮國長公主)
원나라의 황족 출신 공주이고, 본명은 보르지긴 역린진팔라(亦憐眞八剌)이다.
정략결혼 1316년 혼인하여 고려 제1왕비가 되었다.
부부 불화 충숙왕이 고려인 후궁(덕비 홍씨)만 총애하자 심하게 질투하며 갈등을 빚었다.
의문의 죽음 혼인 3년 만인 1319년 갑자기 사망했다.
구타 스캔들 정적들이 "왕이 때려 죽였다"고 원나라에 고발하여, 충숙왕이 원나라로 압송되고 왕위를 위협받는 도화선이 되었다.
● 조국장공주(曹國長公主)
원나라 황족 출신 공주입이고, 본명은 보르지긴 금동(金童)이며, 훗날 공민왕의 정비가 되는 노국대장공주의 고모이다.
정략결혼 첫 정비였던 복국장공주가 사망한 후, 1324년 원나라 대도에서 충숙왕과 혼인하여 이듬해 고려로 함께 왔다.
용산원자 출산 1325년 충숙왕을 따라 한양(현재의 서울) 용산으로 행차했다가, 그곳에 마련된 행궁(천막)에서 아들 용산원자를 낳았다.
젊은 나이의 요절 아들을 낳은 지 불과 두 달 만인 1325년 10월, 용산 행궁에서 향년 17세의 매우 젊은 나이로 갑자기 사망했다.
사후 추봉 사후 18년이 지난 1343년(충혜왕 복위 4년)에 원나라 황실로부터 '조국장공주'로 공식 추봉되었다.
· 용산원자(龍山元子)
출생과 비극 1325년 한양 용산 행궁에서 태어났으나, 어머니 조국장공주가 출산 직후 17세로 요절하는 비극을 겪었다.
이름의 유래 그가 태어난 장소인 '용산'이 그대로 이름(원자)이 되었으며, 이는 오늘날 서울 용산구 지명의 유래가 되었다.
원나라 유학 원나라 황족의 피가 섞였기에 어릴 때 원나라 '대도'로 가서 황실의 보호를 받으며 성장했다.
이른 요절 사촌 형이자 원나라 황제인 토곤 테무르(순제)의 총애를 받으며 조정을 출입했으나, 1341년 향년 17세의 젊은 나이에 대도에서 갑자기 사망했다.
● 경화공주(慶華公主)
원나라 황족 출신 공주이고, 본명은 보르지긴 바얀쿠두(伯顔忽都)이다.
정략결혼 두 번째 정비인 조국장공주가 사망한 후, 1332년 충숙왕과 혼인하여 고려로 왔다.
강간 피해 사건(비극) 1339년 충숙왕이 사망하자, 왕위를 이어받은 의붓아들 충혜왕이 술에 취해 경화공주의 처소를 습격하여 그녀를 강간하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발생했다.
원나라 고발 치욕을 당한 경화공주는 원나라로 돌아가려 했으나 충혜왕이 군사를 시켜 막았다.
이에 그녀는 심복을 통해 원나라 황실에 이 사실을 고발했다.
충혜왕의 폐위 이 사건은 원나라가 고려 왕실을 불신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고, 결국 충혜왕이 원나라 공사들에게 붙잡혀 압송되고 폐위당하는 도화선이 되었다.
사후 추봉 사건 이후 고려에서 지내다 1344년에 사망했으며, 1367년(공민왕 16년) 원나라로부터 '경화공주'로 추봉되었다.
● 덕비 홍씨(德妃 洪氏)
고려의 명문 권문세족인 남양 홍씨(南陽 洪氏) 가문의 딸로 태어났다.(아버지는 남양부원군 홍탁)
충숙왕의 진정한 총애 충숙왕이 원나라 공주들보다 그녀를 훨씬 더 사랑하여, 왕비들의 시기와 질투를 한 몸에 받았다.
두 왕의 어머니 충숙왕과의 사이에서 장남 충혜왕과 삼남 공민왕을 낳았다.
왕실의 중심(태후) 아들 공민왕과 손자 우왕 시기까지 생존하며 왕실의 최고 어른(대비·태후)으로서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공민왕의 든든한 버팀목 아들 공민왕의 개혁 정치를 지지하고, 신돈의 권력 남용을 견제하는 등 조언자 역할을 묵묵히 수행했다.
장수와 최후 1380년(우왕 6년) 향년 8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며, 사후 '명덕(明德)'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 왕정(王禎)(28대 충혜왕)
· 왕기(王祺)(31대 공민왕)
● 수비 권씨(壽妃權氏)
고려의 명문가인 안동 권씨 집안 출신으로, 현복군 권렴의 딸이다.
책봉 충숙왕의 총애를 받아 1335년(충숙왕 복위 4년)에 '수비(壽妃)'로 책봉되었다.
질투와 수난 충숙왕이 그녀를 지나치게 총애하자, 원나라 출신 정비인 경화공주가 질투하여 권씨의 머리카락을 깎아버리려고 시도하는 등 왕실 내 갈등을 겪었다.
최후 충숙왕이 사망한 이듬해인 1340년(충혜왕 복위 1년)에 세상을 떠났다.
주요사건과 인물
● 찰리변위도감 설치 및 개혁 추진(1318년 6월)
내용 충숙왕이 부원배와 권문세족들이 불법으로 빼앗은 토지와 노비를 본래 주인에게 돌려주기 위해 대대적인 개혁 기구인 '찰리변위도감'을 설치함.
결과 권문세족의 강한 반발과 원나라의 압박으로 인해 개혁을 주도하던 신진 관료들이 밀려나면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도감이 폐지됨.
의의 원나라의 간섭기 속에서도 국왕 주도의 민생 안정과 왕권 강화를 도모하려 했던 자주적 개혁 시도였음.
● 복국장공주 사망 및 구타 치사 스캔들(1319년 10월)
내용 제1정비인 원나라 복국장공주가 충숙왕과의 불화 및 질투 끝에 의문의 급사를 하자, 정적인 심왕 왕고 일파가 "왕이 공주를 때려죽였다"고 원나라 황실에 고발함[濮國長公主].
결과 충숙왕이 원나라 대도로 소환되어 국왕 인장(옥새)을 빼앗긴 채 5년간 귀국하지 못하고 억류(유폐)당함.
의의 원나라의 철저한 간섭과 억압 속에서 고려 국왕의 지위와 왕권이 얼마나 취약했는지를 보여주는 비극적인 사건임.
● 조국장공주 혼인 및 용산원자 출산(1324년 9월 ~ 1325년 9월)
내용 유폐에서 풀려난 충숙왕이 두 번째 몽골 공주인 조국장공주와 재혼하여 귀국하던 중, 한양 용산 행궁에서 아들(용산원자)을 출산함[조국장공주, 용산원자].
결과 출산 직후 조국장공주가 17세의 나이로 요절하였으며, 용산원자는 훗날 원나라에서 성장하다 젊은 나이에 사망함.
의의 원나라 황실과의 혈연관계를 유지하려는 정략적 노력의 과정이었으며, 오늘날 서울 '용산구' 지명의 역사적 유래가 됨.
● 충숙왕의 국왕 복위 및 충혜왕 폐위(1332년 3월)
내용 왕위를 물려받았던 장남 충혜왕이 극심한 폭정과 향락을 일삼자, 원나라 황실이 충혜왕을 폐위시키고 상왕으로 물러나 있던 충숙왕을 다시 고려 국왕으로 복위시킴.
결과 충숙왕이 원치 않게 다시 정무에 복귀하였고, 부자간의 감정적 골과 정치적 갈등이 걷잡을 수 없이 깊어짐.
의의 고려 왕실의 안정을 위한다는 명목 하에 원나라가 고려의 국왕 교체를 마음대로 좌지우지했던 간섭기의 씁쓸한 단면을 보여줌.
● 내궁의 격렬한 질투 갈등 사건(1335년 4월)
내용 충숙왕이 세 번째 원나라 부인인 경화공주를 멀리하고, 고려인 후궁인 수비 권씨를 지나치게 총애함.
결과 이에 분노한 경화공주가 군사들을 이끌고 수비 권씨의 처소를 습격하여 머리카락을 강제로 자르려 시도하는 등 격렬한 궁중 암투가 발생함.
의의 원나라 공주들의 우월적 지위와 특권 의식으로 인해 고려 국왕마저도 가정을 온전히 통제하지 못했던 왕실의 취약성을 드러냄.
충숙왕 재위당시 연표

고려 왕 계보
태조 - 혜종 - 정종 - 광종 - 경종 - 성종 - 목종 - 현종 - 덕종 - 정종 - 문종 - 순종 - 선종 - 헌종 - 숙종 - 예종 - 인종 - 의종 - 명종 - 신종 - 희종 - 강종 - 고종 - 원종 - 충렬왕 - 충선왕 - 충숙왕 - 충혜왕 - 충목왕 - 충정왕 - 공민왕 - 우왕 - 창왕 - 공양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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