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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95

[고구려] 5대 모본왕(慕本王) 고구려 5대 모본왕(慕本王) 출생 ? ~ 53년재위 48년 ~ 53년 11월(5년) 가족 부인 1명, 자녀 1남 생애 모본왕은 대무신왕의 맏아들로 이름은 해우(解憂) 또는 해애루(解愛婁)이다. 민중왕이 사망하고 48년에 고구려 5대 왕에 즉위하였다.모본왕은 모질고 사나웠으며, 어질지 못하고 국사를 돌보지않아 백성들이 그를 원망했다고 한다.모본왕의 어머니인 왕후가 오랫동안 아들을 낳지 못하고, 후비인 갈사왕의 손녀 해씨가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이 호동왕자였다. 호동이 총명하고 용맹하게 성장했는데, 뜻밖에 왕후가 늦은 나이에 모본왕을 낳았다. 이에 호동과 모본왕과의 왕권다툼이 시작되었는데, 왕후의 모략으로 호동이 자살하고 모본왕이 태자에 책봉된다. 49년(재위 2년) 봄, 장수를 보내 한나라의 북평, 어양.. 2024. 10. 15.
[고구려] 4대 민중왕(閔中王) 고구려 4대 민중왕(閔中王)출생 ? ~ 48년재위 44년 10월 ~ 48년(4년)가족 부인 1명 생애고구려의 제4대 군주. 2대 유리명왕의 다섯째 아들이며, 대무신왕의 동생이고, 이름은 해색주(解色朱)이다.대무신왕이 죽자 태자(모본왕)의 나이가 어려서 신하의 추대로 즉위했다. 45년(재위 2년) 5월, 동쪽 지방에 홍수가 나서 백성들이 기근에 시달리자, 곡식을 나누어 주었다.47년 4월, 민중원 지역으로 사냥을 나갔다가 석굴을 발견했는데, 신하들에게 '자신이 사망하면 이곳에서 장사를 지내라'고 하고 능과 묘를 만들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48년 민중왕은 생을 마감하였고, 민중원에서 장사를 지내고 민중왕이라고 시호를 내렸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면 석굴에 매장된 것이다. 민중원에서 사냥하다가 스스로 석.. 2024. 10. 11.
[고구려] 3대 대무신왕(大武神王) 고구려 3대 대무신왕(大武神王)출생 4년 ~ 44년(향년 40세)재위 18년 10월 ~ 44년 10월(26년)가족 부인 2명, 자녀 2남 생애고구려의 제3대 군주. 휘는 '무휼'이다.고구려에서 태어난 첫 번째 왕이자, 고구려 초기 팽창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왕이기도 하다.유리명왕의 장남 도절태자가 요절하고, 차남 해명태자는 자결하는 바람에 3남 무휼이 태자에 옹립되었다.대무신왕은 총명하고 지혜로우며, 영웅호걸스럽고 지략이 있었다.이후 18년 10월, 유리왕이 사망하자 11살의 나이로 고구려 3대 왕에 올랐다. 19년(재위 2년) 수도에 지진이 나서 사면령을 내렸고, 백제인 1천여호가 투항해 왔다.21년 대무신왕은 부여 정벌을 위해 출병했는데, 키가 9척인 괴유와 마로를 만났다.괴유와 마로는 부여정벌에.. 2024. 10. 10.
[고구려] 2대 유리명왕(瑠璃明王) 고구려 2대 유리명왕(瑠璃明王)출생 B,C 38년 ~ 18년(향년 56세)재위 B,C 19년 9월 ~ 18년 10월(37년 1개월)가족 부인 5명, 자녀 6남 1녀 생애고구려의 제2대 군주. 평소 사냥을 좋아했고, 재위 중 한나라, 선비, 부여와 대립했다. 몇 안 되는 고구려의 시조 중 하나인 〈황조가〉의 주인공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유리는 주몽이 부여에 있던 시절에 부인 예씨와 결혼하여 낳은 아들이다. 주몽(동명성왕)은 유리가 태어나기 전에 부여를 떠났고 유리는 아버지 없이 성장했다. ​기원전 19년 태자가 된 지 5개월 만에 바로 왕위에 오른 유리명왕은 B,C 18년(재위 2년) 7월, 다물후(多勿侯) 송양(松讓)의 딸을 왕후로 삼았다. 그리고 이 해에 자신의 이복형 온조가 백제를 건국한다. B,C.. 2024. 10. 9.
[고구려] 1대 동명성왕(東明聖王) 고구려 1대 동명성왕(東明聖王-고주몽)출생 B,C 58년 ~ B,C 19년(향년 39세)재위 B,C 37년 ~ B,C 19년(18년)가족 부인 2명, 자녀 3남 생애고구려 시조인 주몽은 아버지 해모수와 어머니 유화부인사이에서 태어났다. 동부여 금와왕의 왕자들의 핍박을 피해 졸본으로 가서 도읍을 정하고 고구려를 세웠다.  어릴때부터 활쏘기에 능했고, 주몽이란 이름도 부여말로 '활을 잘쏘는 사람'을 뜻한다. 졸본에는 이미 구려국이 있었는데 이를 복속하여 더 높은 구려국이라는 뜻으로 고구려를 세웠고, 이로 인하여 고(高)를 성씨로 삼았다. B,C 36년(재위 2년), 송양이 나라를 바치고 항복해 와서 그 땅을 다물도(多勿都)로 삼고 송양을 군주로 봉했다. 옛 땅을 수복하는것을 다물(多勿)이라 해서 그렇게 이름.. 2024. 10.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