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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고구려] 18대 고국양왕(故國壤王)

by [悠悠自適] 2024. 1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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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18대 고국양왕(故國壤王)
출생 ? ~ 391년 5월
재위 384년 11월 ~ 391년 5월(6년 5개월)
가족 부인 1명, 자녀 1남

생애
고국양왕은 고국원왕의 차남이며, 소수림왕의 동생이고, 이름은 이련이다.
384년 11월, 형인 소수림왕이 후사없이 사망하자, 고구려 18대 왕에 올랐다.
고국양왕의 즉위하던시기에는 모용황의 아들 모용수가 후연을 건국하였다.
후연은 고구려의 지배지역이었던 유주와 기주를 대군을 이끌고 점령하였다.
이에 고구려는 후연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취했다.

고국양왕은 즉위 이듬해인 385년 6월에 4만의 군사를 보내 모용수의 부대를 공격하였다.
모용수는 대방으로 하여금 방어를 하였으나, 고구려는 그들을 패퇴시키고 현도성을 함락, 포로 1만을 잡았다.
이러자 모용수는 그해 11월 모용능에게 대군을 주어 현도와 구요동을 회복하고 고구려에 타격을 주었다.
이렇게 고구려가 북쪽에서 후연을 막아내는 사이 남쪽에서는 백제가 고구려를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에 386년 8월, 고구려는 먼저 백제를 공격하였다.
미리 백제를 선제공격하여, 후방을 치지 못하게 계획에 따른것이고 직접적인 전쟁은 하지 않았다.
그 결과 백제는 섣불리 고구려를 공격하지 못했고, 고구려는 말갈을 이용해 백제를 견제하였다.
그래서 고구려는 백제의 경계보다 후연 공격에 집중하였다.
이를 눈치챈 백제가 389년 9월에 고구려 후미를 급습하자, 고구려는 후연 공략을 미루었다.

이듬해 9월, 백제가 달솔 진가모를 내세워 다시 고구려 도압성을 공격, 주민 2백명을 포로로 잡아갔다.
설상가상으로 고국양왕이 병으로 눕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고국양왕은 태자 담덕(광개토대왕)에게 왕위를 내주고 상왕으로 물러났지만, 건강악화로 생을 마감하였다.
능은 고국양 지역에 마련하고, 묘호는 고국양왕(故國壤王)이라고 하였다.

 

주요사건
· 후연의 등장
고국양왕이 즉위하던 384년에는 전진에 의해 멸망했던 모용 선비의 연나라가 재건되었다.
모용수는 강국이었던 전연의 왕인 모용황의 아들이고, 전연시대에 많은 공을 세웠다.
하지만, 모용위가 왕위에 오르면서 미움을 받아 전진에 투항하여, 많은 역할을 했다.
383년 전진이 무리하게 동진을 공격하다 대패하자, 자신의 군사를 이끌고 하북으로 이동, 고구려의 유주와 기주를 차지하고 국호를 연(후연)이라 하였다.

가족관계(고국양왕 가계도)

· 왕후
왕후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 담덕
고국양왕의 장남이자, 고구려 19대 왕. 광개토왕편 참고.

고국양왕 재위당시 삼국시대 연표

고국양왕은 후연과 백제사이에서 고구려를 지켰으나, 건강악화로 아들인 담덕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동시대에 백제는 침류왕, 진사왕이 재위하였고, 신라는 내물왕이 재위하였다.

고구려 왕 계보
동명성왕-유리명왕-대무신왕-민중왕-모본왕-태조왕-차대왕-신대왕-고국천왕-산상왕-동천왕-중천왕-서천왕-봉상왕-미천왕-고국원왕-소수림왕-고국양왕-광개토대왕-장수왕-문자명왕-안장왕-안원왕-양원왕-평원왕-영양왕-영류왕-보장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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